▲ 바다의 탄소 흡수를 놓고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표적 해양자원인 갯벌을 놓고 IPCC의 블루카본 인정을 위한 정부와 학계, 기업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국내의 한 갯벌에 해가 지는 모습. <환경부> |
[편집자주]
녹색 성장, 녹색 금융, 녹색 기술.
탄소중립을 실현을 위한 움직임에는 대부분 ‘녹색’ 혹은 ‘그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나무와 숲이 띄는 녹색 빛깔은 우리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추진의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해양수산부는 28일 기아차와 ‘블루카본 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탄소중립을 위해 갯벌 복원, 바다숲 조성 등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탄소중립을 위해 이들은 왜 나무를 심지 않고 갯벌을 복원할까? 왜 '그린'이 아니라 '블루'를 선택했을까?
세계는 이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중요한 탄소 흡수원으로 바다를 주목하고 있다.
육지 면적의 두 배가 넘는 영역이자 생명의 근원인 바다에서 일어나는 탄소의 교환은 인류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블루카본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탄소중립, 이제는 블루카본](1) 현대차그룹 기아가 갯벌을 복원하는 까닭, 새로운 탄소저장소
[탄소중립, 이제는 블루카본](2) 탄소흡수원법 등 근거법 미흡, 법령 정비 시급
[탄소중립, 이제는 블루카본](3) 서울대 교수 김종성 "해양은 강력한 탄소흡수원" |
[비즈니스포스트] 바다는 여전히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탄소중립 측면에서 바다의 탄소 순환 역시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제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바다에서 새로운 탄소흡수원을 발굴하려 애쓰고 있다. 이른바 '블루카본'이다.
해양수산부는 국내 블루카본의 확대 및 증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8일에는 현대차그룹 기아와 '블루카본 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해양수산부와 기아는 이번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갯벌 식생 복원사업을 시행사고 갯벌의 탄소흡수력 증대 관련 조사·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루카본은 무엇인지, 이들은 왜 탄소흡수원 및 저장소로서 갯벌에 주목하는지, 한국 정부와 학자들은 왜 블루카본을 국제사회에서 인정 받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살펴본다.
▲ 현재 IPCC에서 블루카본으로 공식 인정하는 해양 생태계는 맹그로브숲, 염습지, 잘피림 세 가지다. 맹그로브숲은 ‘열대나 아열대 지역의 갯벌이나 하구의 소금기 있는 짠물에서 자라는 식물집단’으로 동남아시아 등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사진은 맹그로브숲의 모습. <게티이미지> |
◆ 블루카본의 탄소흡수 속도, 그린카본 50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탄소의 주요 흡수원을 ‘그린카본(Green Carbon)’과 ‘블루카본(Blue Carbon)’으로 분류한다.
그린카본은 숲과 같은 육상 생태계가, 블루카본은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각각 의미한다.
산림 등 육상 생태계는 1997년 교토의정서 이후 오랜 기간 널리 탄소의 흡수원으로 인식돼 왔다. 식물은 광합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를 흡수해 탄소(C)와 에너지를 얻고 산소(O2)를 내놓는다는 점은 오랫 동안 알려져 이젠 대중적 상식이 됐다.
하지만 해양 생태계의 탄소 흡수는 2009년 국제자연연맹(IUCN) 보고서에서 처음 '블루카본'이 언급되면서 비교적 늦게 논의가 시작됐다.
블루카본이 처음 언급된 2009년 국제자연연맹(IUCN) 보고서에 따르면 블루카본의 탄소흡수 속도는 그린카본과 비교해 50배 빠르다.
이후 2013년 IPCC가 내놓은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작성 가이드라인’ 부속서에 블루카본이 탄소흡수원으로 추가되면서 국제적으로 공식 탄소감축 수단으로 인정됐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탄소흡수원을 보유한 국가는 유엔에 제출할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통계)를 작성할 때 그 흡수량만큼을 탄소 배출량 산정에 반영할 수 있다.
현재 블루카본으로 인정되는 해양 생태계는 맹그로브숲, 염습지, 잘피림 세 가지다.
맹그로브숲은 ‘열대나 아열대 지역의 갯벌이나 하구의 소금기 있는 짠물에서 자라는 식물집단’으로 동남아시아 등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염습지는 ‘바닷물이 드나들어 염분 변화가 큰 습지로 염분에 강한 염생식물이 자라는 곳’을, 잘피림은 ‘거머리말 및 새우말 등 바닷물에서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의 군락지’를 의미한다.
해양환경공단,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서울대·부산대 연구팀 등 10개 기관이 2017년부터 4년 동안 진행한 ‘국가 블루카본 정보시스템 구축 및 평가관리기술 개발’ 공동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에 맹그로브숲은 없으나 염습지는 35㎢, 잘피림은 19㎢ 존재한다.
▲ 연안 습지는 염생식물이 자라는 염습지와 그외 비식생 갯벌로 구분된다. 사진은 대표적 염생식물인 칠면초가 인천시 강화군 석모도 해안에 서식하는 모습. 갯벌 위에 자리한 붉은 식물이 칠면초다. <강화군> |
◆ 세계는 왜 블루카본에 주목하나?
2022년 발표된 ‘2021년 세계 탄소 수지 보고서(Global Carbon Budget)’를 보면 2020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지구 전체에 걸쳐 374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다.
이 가운데 180억 톤이 흡수되지 않고 대기에 남아 온실가스 등 기후변화를 유발했다.
나머지 이산화탄소는 육상에서 104억 톤, 해양에서 108억 톤이 각각 흡수됐다. 바다를 통한 이산화탄소의 흡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숲 등 육상 생태계는 노화되면 탄소 흡수력이 떨어지지만 해양 생태계는 탄소 흡수력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며 산불 등과 같은 사고 위험도 적다.
그린카본과 달리 블루카본은 전 지구적으로 특정 지역에의 편중성이 적다는 점도 세계 각국 정부의 관심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린카본의 대표적 흡수원인 열대우림을 보면 아마존이 전 세계 열대우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그나마도 대부분 브라질에 속해 있다.
하지만 맹그로브숲, 염습지, 잘피림 등 블루카본은 세계 151개 나라가 최소 한 가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71개국은 세 가지를 모두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세계 각국에 고루 분포해 있다.
▲ 한국의 갯벌을 블루카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공조도 중요하다. 사진은 조승황 해양수산부장관과 루훗 빈사르 판자이탄 인도네시아 해양투자조정장관이 7월2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해양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모습.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맹그로브숲을 보유한 국가다. <대통령실기자단> |
◆ 블루카본으로서 ‘갯벌’의 가치, IPCC에서 인정 받아야
한국 정부에서는 해양수산부를 주무부처로 삼아 2017년 이후 연안습지 현황 조사 등을 통해 블루카본을 국가 통계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1월에는 2022년 통계부터 국내 염습지와 잘피림의 연간 탄소흡수량 1만1000톤 등을 국가 온실가스 통계에 반영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국가 온실가스 통계에 블루카본을 공식적으로 반영한 국가는 한국이 미국, 호주에 이어 세 번째다.
조승환 해양수산부장관은 공식 통계에 블루카본 반영하는 것과 관련해 “블루카본을 향한 기대와 관심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며 “비식생 갯벌, 바다숲 등 우리 바다가 보유한 다양한 블루카본 자산의 탄소 흡수능력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블루카본 관련해 가장 공을 들이는 목표는 맹그로브숲 등과 마찬가지로 ‘갯벌’을 블루카본으로 IPCC 공식 인정을 받는 일이다. 여기서 갯벌은 연안습지 가운데 염생식물이 자라는 염습지를 제외하고 식물이 자라지 않는 비식생 지역을 의미한다.
세계 5대 갯벌로도 꼽히는 한국의 갯벌은 우리가 보유한 가장 경쟁력 있는 해양자원이다.
‘국가 블루카본 정보시스템 구축 및 평가관리기술 개발’ 공동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연안습지 면적의 대부분인 2447㎢는 비식생 갯벌이다. 염습지 35㎢, 잘피림 19㎢와 비교하면 연안 습지 면적에서 갯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인 데다 생물 다양성도 풍부하다.
하지만 아직 갯벌의 탄소흡수와 관련된 과학적 연구가 축적되지 않았던 만큼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블루카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7년 이후 블루카본사업 1단계를 진행하며 김종성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해양수산부, 해양환경공단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4년에 걸친 연구 끝에 2021년에 비식생 갯벌의 탄소흡수 매커니즘과 흡수량 등을 밝힌 연구결과를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식생 갯벌에 서식하는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 식물인 ‘저서미세조류’가 탄소를 흡수한다.
저서미세조류란 저서 즉 물 밑바닥에 사는 미세조류를 뜻한다. 이들은 현미경으로 봐야 보일 정도로 작은 단세포성 생물로, 광합성을 한다.
이들이 사체가 된 뒤에는 퇴적물로 쌓여 탄소를 함께 침적시킨다. 바닥에 침적된 사체와 함께 탄소가 저장되는 것이다.
국내 비식생 갯벌은 1300만 톤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으며 저서미세조류를 통해 한해에 흡수하는 탄소의 양은 최대 49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올해부터는 김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블루카본사업단이 출범하고 블루카본사업 2단계가 시작됐다. 블루카본사업단에는 학계를 비롯해 기업들도 참여한다.
블루카본사업단은 갯벌의 탄소흡수 관련 연구성과 축적과 함께 조개류 등 새로운 탄소흡수원을 발굴하고 있다. 또 연안 침식 감소를 위한 ‘리빙-쇼어라인(living-shoreline)’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염생식물로 연안 생태계가 살아나면 연안 침식을 줄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면 한국 갯벌은 언제쯤 국제사회로부터 블루카본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염습지가 블루카본으로 인정받은 과정을 고려해 보면 갯벌도 단기간에 블루카본으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연구자료 축적에 5~6년, IPCC 가이드라인 개정에 2~3년 등 소요 시간을 고려하면 2030년 초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