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가 최근 수 년 사이에 대형거래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남선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사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네이버에 합류하기 이전부터 업계에서 인수합병으로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
[비즈니스포스트] ‘Head of M&A(인수합병 총괄).’
김남선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네이버에 합류하면서 맡았던 역할이다. 그가 인수합병을 총괄하면서부터 네이버는 부쩍 대형 거래의 ‘큰 손’으로 부상했다.
김 CFO의 합류 이전만 하더라도 네이버는 투자에 보수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네이버와 자주 비교되는 카카오가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 사세를 키운 것과 비교해 행보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CFO의 합류 이후 네이버의 경영 기조는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 IT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매우 공격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네이버는 인수합병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
5일 인수합병업계에 따르면 네이버가 최근 2년 사이 인수합병이나 지분투자, 지분교환 등에 주도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김남선 CFO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김 CFO는 인수합병업계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이력은 화려함 그 이상이다.
김 CFO는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했다. 방학 중에는 미국 법무부 형사과, 미국 최상위권 로펌으로 꼽히는 크라벳, 스웨인&무어 등에서 인턴 변호사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크라벳과 스웨인&무어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소송과 인수합병을 처리하는 로펌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는 2007년 8월 하버드대학교 로스클을 졸업한 뒤 곧바로 크라벳, 스웨인&무어의 사내변호사로 합류했다. 2년8개월을 일하며 그는 주로 인수합병과 자본시장 등을 담당했다.
그가 로펌을 나와 이직한 곳은 라자드프레레스다. 라자드프레레스는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주로 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금융 자문과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 CFO는 라자드프레레스에서도 역시 인수합병 업무를 맡았다. 주로 전력기업과 에너지기업의 인수합병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서 2년 남짓한 시간을 보낸 뒤 김 CFO는 모건스탠리로 이직했다. IB(투자은행)부문 상무로 일하면서 서울에서 3년 반, 홍콩에서 1년 반을 보냈다.
그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2017년 4월 호주계 금융그룹인 맥쿼리 한국PE를 총괄하는 전무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맥쿼리인프라자산운용은 2018년 3월 SK텔레콤과 함께 추진한 ADT캡스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인수규모가 3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킬 수 있었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김남선 CFO였다.
김 CFO는 2019년 11월에 맥쿼리의 LGCNS 지분 35% 인수 거래도 성사시켰다. 이 또한 인수금액이 1조 원을 넘는 대형 거래였다.
김 CFO는 이 거래들을 성사시킨 덕분에 ADT캡스와 LGCNS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 CFO의 네이버 합류는 우연이 아니다. 네이버는 김 CFO를 영입하기 전부터 자체적으로 인수합병과 지분투자 등에 관심을 쏟고 있었는데 인수합병 전문가인 김 CFO를 영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김 CFO는 2020년 8월 네이버의 재무리더로 합류했다.
네이버는 특별 조직 ‘Growth& True North’을 만들어 그에게 맡겼다. 한국말로 옮기면 ‘성장과 진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조직은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네이버가 가야 하는 성장 방향성을 고민하는 팀’이다.
True North는 '항상 변하지 않는 북극성의 방향'을 의미하는데 네이버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법과 재무, 전략, 투자, 사업 등에 전문성을 갖춘 이들로 구성된 소규모의 이 팀은 글로벌 기업들과 인수합병 등 파트너십 기회를 찾고 실제로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네이버가 빨리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찾은 뒤 실제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투자 기회를 탐색하고 인수로 매듭짓는 것이 김 CFO의 역할이다.
실제로 김 CFO는 이 조직을 이끌면서 네이버의 굵직한 인수합병과 지분교환, 지분투자 등을 주도했다.
2020년 10월 네이버가 CJENM, 스튜디오드래곤, CJ대한통운과 모두 6천억 원 규모의 주식을 서로 교환한 것은 그 시작이었다. 콘텐츠와 물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거래였다.
2021년 3월에는 신세계그룹과도 2500억 원 규모로 지분을 맞교환했다. 네이버의 여러 기술적 강점과 신세계그룹의 유통사업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결합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읽혔다.
네이버가 2021년 1월 북미 웹소설 플랫폼인 왓패드를 인수하는 데도 김 CFO의 공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김 CFO는 네이버웹툰 대표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꾸려 왓패드 인수전의 전략을 짰고 성공적으로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왓패드 인수 금액은 6억 달러로 당시까지 네이버가 진행한 인수합병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거래였다.
김 CFO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네이버는 1년 반 만에 왓패드 인수 금액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인수합병으로 네이버의 역사를 고쳐 썼다.
네이버는 4일 북미 최대 규모의 온라인 중고 패션 플랫폼인 포쉬마크를 2조3천억여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네이버의 첫 ‘조 단위 투자’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김 CFO는 이와 관련해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새로운 도전”이라는 짧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앞으로도 김 CFO는 인수합병에서 그의 주특기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는 8월 초 열린 네이버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인수합병 계획은 구체적으로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주력하고 있는 사업과 성장동력을 제공하는 사업 분야에 대한 인수합병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인수합병 전문가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CFO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주주가치 제고 등 본연의 역할에 다소 미흡한 면이 있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주주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이버 주가는 포쉬마크 인수를 발표한 4일 8.79% 급락한데 이어 5일에도 6%가량 하락하고 있다. 네이버 주주들은 포쉬마크 인수가 네이버에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네이버가 보유한 현금이 2분기 말 기준 2조9천억 원가량이라는 점에서 포쉬마크 인수로 재무적 여력이 상당히 축소될 가능성을 염려하는 시각으로 읽힌다.
김 CFO는 이와 관련해 컨퍼런스콜에서 “네이버의 단기적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중장기적 성장을 희생하면서 수익성만 챙기는 전략만 고수할 수는 없다”며 “단순히 수익성만으로 재무적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닌 본격적으로 글로벌 개인 사이 거래(C2C)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것으로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이커머스 전략을 펼칠 것이다”고 말했다.
김남선 CFO는 이력만큼이나 가족관계도 유명하다.
김 CFO의 아버지는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택기 전 의원으로 그의 집안은 정계와 재계를 아우른다.
김 전 의원의 아버지, 즉 김 CFO의 할아버지는 7선 국회의원으로 국회부의장까지 올랐던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김 CFO의 큰할아버지 역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김택기 전 의원의 친형은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기도 하다. 김준기 회장의 조카가
김남선 CFO라는 얘기다. 현재 DB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남호 회장은 김 CFO와 사촌 사이다.
외가도 친가에 뒤지지 않게 화려하다.
김 CFO의 어머니는 이양희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이다. 이 위원장의 아버지는 7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로 최근 ‘사사오입을 막기 위해 국회부의장의 멱살을 잡았던 분’으로 언급돼 회자된 바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