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서울의 수해방지 시스템이 '대심도 빗물터널'과 같이 빗물을 버리기 위한 대규모 시설이 아니라 건물별 빗물저장소, 산 중턱의 물모이 등 빗물활용이 가능한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빗물박사'로 통하는 한 교수는 2000년부터 20년 넘게 빗물활용의 중요성을 알려온 수자원 관리 분야의 권위자다. 사진은 한 교수가 자신의 작품인 서울대의 명물 '35동 옥상텃밭'에서 재배 중인 작물을 둘러보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2022년 여름은 우리에게 수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한 해가 됐다.
서울은 11년 만에 대규모 침수 피해를 입었고 남부지방에서도 초강력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포항제철소가 침수되는 등 예년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물난리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강수 증가, 고밀화된 서울의 도시환경 등 여건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수해방지 대책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즈니스포스트는 17일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에서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를 만나 바람직한 서울 수해방지 대책의 방향을 물었다.
- 현재 서울시는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로 수해방지 대책의 기본 방향을 잡고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심도 빗물터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대심도 빗물터널은 우선 ‘홍수 방지’라는 단일한 목적의 시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봄비나 가을비에는 전혀 쓰일 일이 없고 여름철에도 올해와 같은 큰 비가 올 때나 쓰이게 된다.
어쩌다 큰 비가 오면 잘 쓰일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조 단위 예산이 들어간 시설이 한 해 내내 놀게 된다.
두 번째로 위험관리 측면에서 집중형 시설이라는 점도 문제다.
대심도 빗물터널로 대규모의 빗물을 모아 처리하는 만큼 이 시설 하나가 잘못되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재산피해가 난다.
그래서 설계부터 매우 튼튼하게 해야 하고 만든 뒤에 관리도 더욱 철저하게 해야 하는 등 부담이 크다.
대심도 빗물터널의 세 번째 단점은 빗물을 전혀 활용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빗물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모으면 깨끗해서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심도 빗물터널은 땅에 떨어져 더러워진 빗물을 그대로 모아 버린다.”
- 건물마다 빗물 저장소를 설치하고 빗물을 모아 활용해야 한다고 오랜 기간 주장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건물별 빗물 저장소가 수해 방지 측면에서 어떻게 도움이 되나?
“수해는 모여드는 빗물이 배수처리 능력을 넘어설 때 발생하는 것이다.
각 건물에서 옥상 면 등을 통해 모은 빗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모아 둔다면 그만큼 해당 지역의 배수처리 부담을 줄여 준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은 빗물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한 정수 처리만 거치면 식수로 쓸 수 있고 식수가 아니더라도 정원수, 변기물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빗물 저장소는 건물을 지을 때 지하 한 층을 더 파서 설치공간을 확보하거나, 이미 완성된 건물이라면 지하주차장 등 여유 공간의 한쪽에 저장시설을 만들면 되므로 대규모 공사도 필요하지 않다.
요컨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수해를 막는 동시에 빗물을 다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각 건물이 빗물 처리 부담을 분산하는 방법이므로 위험도 함께 분산된다.
한두 건물에서 빗물 저장소가 고장이 나더라도 주변에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거나 주식 투자에서 손실위험을 낮추기 위해 분산 투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 근래 들어서는 산에 ‘물모이’를 만드는 데도 앞장을 서고 있다. 물모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마침 서울은 산이 많은데 서울에도 물모이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물모이는 산 중턱 경사면 곳곳에 나무, 돌 등을 활용해 소규모로 빗물을 모아 두는 자연 친화적 시설이다.
물모이를 만들어 두면 산의 경사면을 타고 평지로 흘러가는 빗물의 양을 줄이면서 산을 촉촉하게 젖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산불 예방, 산사태 방지에 도움을 주고 지하수 보충, 온도조절, 생태계 활성화 등 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다.
물모이는 슬로바키아에서 2005년에 대형 산불을 겪은 뒤 산불방지 대책으로 등장했는데 물모이를 활용한 뒤로 산불 피해가 사라졌다.
한국은 산이 많고 여름에 비가 집중되는 만큼 산에 빗물을 저장하는 물모이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서울도 산이 많은 도시다. 서울 내 산 곳곳에 물모이를 만들어 두면 분명 수해 방지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가령 이곳 관악산에도 곳곳에 물모이를 만들면 큰 비가 내릴 때 도림천의 수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빗물을 단순히 모아 버리는 일을 넘어 빗물이 내리는 단계부터 모아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다. 이미 많은 지방자치단체들도 빗물 저장소를 설치하면 건물 용적률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조례를 마련해 놓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아직 빗물을 활용하는 시설이 좀처럼 일상화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왜일까?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크게 재미를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야 한다. 수해를 포함해 각종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세간의 이목이 쏠릴 대규모 사업을 추진해 성과를 과시하는 편이 이득이 된다.
하지만 빗물 저장소는 사람들이 실제로 보면 별다른 감흥이 오지 않을 정도의 소규모 시설이다. 그런 시설을 여러 곳에 설치하자는 주장은 위험과 부담이 분산되는 것처럼 세상의 관심도 모이지 않는다.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굴릴 수 있는 예산만큼이 곧 힘인 공직 사회에서 빗물 저장소 같은 사업은 예산을 따오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빗물 저장시설이 효과를 내 자신의 업무 영역에서 수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면 돋보일 만한 성과는 내보이지 못한 채 오히려 예산이 깎일 수도 있다.
건물을 짓는 건설사들로서도 미미한 수준의 용적률 인센티브는 별다른 유인이 되지 않는다.”
- 결국 우리 사회가 단순히 수해 방지에 머물지 않고 빗물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과 인식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빗물 활용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직접적으로 물과 관련해서 수도요금이 부담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빗물 활용이나 물관리 시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한 달에 물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수도요금은 얼마나 내는지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회적 비용이 모두 우리 아들, 딸 혹은 손자, 손녀에 전가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번 대심도 빗물터널만 보더라도 이미 투입하겠다는 예산만 조 단위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대심도 빗물터널을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지속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 관리해야 한다. 그 비용은 누가 내는가?
모두 우리 자녀들, 손주들의 부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시설을 짓자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편하기 위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상황은 비단 빗물 관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환경문제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려거든 최소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무영 교수는 누구?
한 교수는 ‘빗물 박사’로 통하는 국내 유일의 빗물 전문가다.
2000년에 본격적으로 빗물 연구에 뛰어든 뒤 20년 넘게 강연, 저술, 언론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빗물 활용의 중요성을 알려 왔다.
2007년부터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등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를 돌며 빗물 관리시설을 설치해 세계 곳곳의 식수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앞장서 왔다.
국내에서는 서울 광진구의 주상복합 건물인 ‘스타시티’가 한 교수의 설계로 지어졌다. 스타시티는 빗물을 활용하는 덕분에 수해 위협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연간 공용수도요금이 3천 원대에 불과하다.
서울대의 명물인 ‘35동 옥상 텃밭’도 한 교수의 작품이다. 국내 대부분 언론이 한 번씩은 취재 기사를 낸 35동 옥상 텃밭은 건물의 옥상을 텃밭으로 활용하면서도 빗물을 머금을 수 있어 인근 지역에 수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 빗물에 대한 대표적 오해
대중이 빗물 활용에 관심을 두지 않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는 ‘환경오염으로 더러워진 산성비’라는 편견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빗물은 자연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산성을 띄게 된다. 대기에는 일정 수준의 이산화탄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내리는 비의 평균 산성도는 pH 4.3~5.8 안팎이고 사람의 피부 표면도 평소에 pH 4.5~6 정도인 만큼 비를 맞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빗물을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는 말도 근거가 없다. 매일 머리를 감을 때 쓰는 샴푸의 산성도는 pH 3.0 안팎으로 빗물보다 산성도가 강하다. 산성도는 pH가 7에서 1씩 줄어들수록 10배씩 커진다.
빗물은 식수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오렌지 주스는 pH 3.0, 콜라는 pH 2.5 등으로 빗물보다 산성도가 적게는 10배, 많게는 100배 이상 강하다.
빗물에 대한 오해는 모두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 수준의 괴담에 불과한 셈이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