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신선한 회를 산지에서 당일에 배송한다는 아이템으로 누적 170억 원 투자 유치를 받았던 스타트업 ‘오늘식탁(오늘회 운영사)’이 하룻밤 사이에 문을 닫았다.

시리즈B 단계까지 투자받은 회사가 한 순간에 쓰러진 것을 놓고 스타트업계 안팎의 충격이 크다.
 
170억 유치에도 문 닫은 '오늘회', 유통업계 스타트업 '오징어게임' 시작

▲ 회 당일배송 플랫폼으로 유명했던 오늘회가 1일부로 서비스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파악된다. 사진은 오늘회에서 판매됐던 한 상품. <오늘회>


일각에서는 ‘올 것이 오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성장을 위해 적자를 마다하지 않았던 스타트업들이 더 이상 자금줄을 찾지 못해 줄도산하는 사태를 우려하는 시각이 스타트업계 전반에 번지고 있다.

2일 스타트업계에 따르면 회 당일배송 플랫폼으로 유명한 ‘오늘회’가 1일부터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현재 오늘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은 단 하나도 없다. 대부분 상품은 ‘일시품절’로 표기돼 있으며 ‘내년 ○월에 다시 만나요!’라는 공지가 붙어 있는 상품도 모두 구매가 불가능하다.

고객센터도 연락두절이다. 카카오톡을 통해 1대1 채팅 문의를 하려 해도 메시지가 전송되지 않는다.

사실상의 플랫폼 운영 종료로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최근 오늘회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줄줄이 퇴사했는데 오늘회의 서비스를 이어가기 위한 추가 자금 유치가 어려워진 것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오늘식탁은 대책 마련을 위해 이사회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오늘식탁의 창업자인 김재현 대표가 8월31일자로 모든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스타트업계에 따르면 오늘회는 올해 초부터 자금난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된다.

2월부터 일부 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제 때 주지 못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6월부터는 대금 지급이 아예 중단됐다. 오늘회가 협력업체에 주지 못한 대금은 약 40억 원 규모인데 오늘회가 지난해 매출 195억 원을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7월에는 협력업체에게 지급해야 할 대금을 정산할 수 없다는 내용의 ‘부분 디폴트’를 공지하기도 했다.

오늘회가 서비스를 전격 중단한 것은 이러한 자금난을 타파하기 위한 추가 투자를 유치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회사가 무너졌다는 얘기다.

2018년 첫 투자(8억 원) 유치 이후 2019년 시리즈A(40억 원), 2021년 시리즈B(120억 원) 등 모두 168억 원의 투자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기업조차 문을 닫은 것은 꽤나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사태는 비단 오늘회에만 한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스타트업계와 벤처캐피탈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신선식품 유통을 내걸어 성장해온 기업들이 이런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바라본다.

최근 수 년 동안 이런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가입자 수 확대→거래액 증가→추가 투자 유치’를 반복하며 성장해왔다. 확고한 비전만 있다면 비록 적자가 나더라도 외형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는 점을 앞세워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이끌어내기가 비교적 쉬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로 조달한 자금 대부분을 외형 확대에 재투자했다.

신선식품 유통 플랫폼들이 너도나도 하는 ‘첫 구매 100원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신규 고객을 유입시키면 거래액과 매출이 자연스럽게 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고성장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회사들은 한 분야에 특화한 '버티컬 플랫폼'이라는 DNA를 지우고 종합몰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에 열을 올렸다.

오늘회 역시 플랫폼 이름에서 보듯 회에 특화한 플랫폼이었지만 점차 과일과 채소, 정육 등 다양한 상품군을 갖춰나갔다. 일부 식품 유통 플랫폼에서는 가전과 화장품 등도 판매된다.

배송지역을 다양화하는 것도 이들의 전략이었다. 우선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배송 서비스를 진행하다가 더 급격한 성장을 위해 충청권과 경상권까지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실을 챙긴 기업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이 시장의 맹점으로 꼽힌다.

오늘회와 같이 신선식품 유통을 내걸고 있는 마켓컬리나 정육각 등도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사업을 확대했지만 동시에 적자도 곱절로 불어났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저금리로 자본시장 상황이 양호한 덕분에 추가 투자를 받아내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상황도 180도 달라지고 있다.

스타트업의 돈줄이 되는 벤처캐피탈업계에 돈이 말라가면서 이제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비전만 믿고 투자하기보다는 성장성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이익을 낼 수 있는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기업만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가 적자 상태에 빠져 있는 신선식품 유통 플랫폼으로서는 추가 투자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스타트업의 한 관계자는 “오늘회 사례는 초기 상태를 벗어난 n년차의 스타트업이 돈을 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고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투자시장에서도 비전과 시장의 성장성만으로는 설득이 먹히지 않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애초 이런 상황을 스타트업계가 스스로 자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성장에만 매몰된 탓에 ‘사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업의 본질은 매출을 내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매출과 적자를 동시에 키우는 사업 구조만이 성공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하다보니 기업의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재무적 안정성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바라본다.

이른바 쿠팡의 ‘계획된 적자’ 전략이 다른 후발주자에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여러 플랫폼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