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러시아가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희귀가스(noble gases) 수출을 제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미국과 홍콩 등으로 반도체 공정용 희귀가스 조달처를 다각화하는 한편 국내 생산을 통해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제품. |
21일 CNN 등 해외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가 5월 말부터 ‘비우호적인’ 국가에 희귀가스 수출을 제한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지고 있다.
희귀가스는 공기에 들어있는 양이 희박한 아르곤, 헬륨, 네온 등 6가지 기체 원소로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물질이다.
이 가운데 특히 네온은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전자 회로를 새길 때 쓰이는 ‘엑시머 레이저가스’의 주원료로 반도체 생산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네온 공급량의 30%를 차지한다.
러시아는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한국, 미국, 일본과 유럽연합(EU) 27개국에 희귀가스 수출을 제한했는데 특히 한국이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은 자체적으로 일부 반도체용 가스를 생산하고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테크셋의 오나스 순드크비스크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있는 한국이 가장 먼저 고통을 느낄 것”이라며 “한국은 희귀가스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이나 일본 유럽과 달리 생산을 늘릴 대형 가스회사가 없다”고 분석했다.
이미 국내에 수입되는 네온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5월 국내 네온 수입 가격은 kg당 2302달러로 4월보다 1.8배 올랐으며 2021년 평균가격인 59달러와 비교하면 40배 가까이 상승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인 올해 2월만 해도 네온 가격은 256달러 수준이었다.
다만 반도체 공정에서 가스 원재료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은 만큼 당장 비용 부담이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가스가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양이 많지는 않은 데다 다른 공급지도 있는 만큼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며 “비축돼 있는 재고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소 네온 재고량을 3개월치 이상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러시아 수출 제한이 장기화하면 반도체 공장 가동 등 타격을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 가동 체제로 돌아가며 잠깐이라도 멈추면 재가동에 많은 비용 들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성이 크다.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등으로 반도체용 가스 조달처를 확대하고 있다.
올해 5월 미국에서 수입된 네온은 4월보다 39배 증가했고 중국에서도 수입을 늘리고 있다. 중국은 2015년 이후 희귀가스 생산설비에 상당한 투자를 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는 만큼 러시아의 수출 제한 조치에 따른 최대 수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자체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는 2022년 1월 특수가스 전문 소재기업 TEMC와 손잡고 포스코 광양제철소 산소공장 내 공기분리장치를 활용해 네온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2019년부터 약 2년에 걸친 개발 노력 끝에 네온가스의 완전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다.
포스코는 이미 시운전을 통해 품질 평가를 완료했으며 2022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 상업 생산을 시작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포스코가 생산할 수 있는 네온의 양은 국내에서 필요한 네온의 약 16% 수준에 머문다.
다만 빠른 시일 내에 포스코 외의 국내 기업이 네온 생산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네온은 대기에 매우 낮은 농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 초대형 철강 공장에서 생산하는데 이와 같은 설비구축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시장조사업체 서플라이프레임의 리처드 바넷 최고마케팅책임자는 “다른 회사에서도 네온을 생산할 수 있지만 생산량이 증가하는 데는 최소 9개월에서 2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