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대규모 반도체기업 인수합병을 성사할 수 있을까?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잠재적 인수합병 매물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고 최근에는 이해관계가 얽힌 나라들에서 대형 인수합병을 쉽사리 용인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삼성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인수합병 장벽 높아져, 삼성전자 매물 찾기 쉽지 않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추진되는 인수합병들에 줄줄이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중국 사모펀드 와이드로즈캐피털이 미국 매그나칩반도체(옛 하이닉스반도체 시스템반도체부문)의 인수를, 미국 낸드플래시회사 웨스턴디지털이 일본 동종사 키오시아의 인수를 각각 추진하고 있다.

미국 종합반도체회사 마벨테크놀로지의 네트워크 반도체회사 인파이 인수,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회사) AMD의 동종사 자일링스 인수,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회사 엔비디아의 영국 팹리스 ARM 인수, 미국 아날로그 반도체회사 아날로그디바이스의 동종사 맥심인테그레이티드 인수 등 인수계약 체결 뒤 글로벌 경쟁당국의 심사를 받고 있는 거래들도 많다.

이런 인수합병건들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나라들이 정부 차원에서 반대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와이드로즈캐피털의 매그나칩반도체 인수와 관련해 안보위협 문제를 들어 반대하는 의견을 매그나칩반도체에 통지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시장과 소비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수합병은 정부가 아닌 각 나라 경쟁당국이 타당성을 심사한다”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거래에 의견을 내놓으면 경쟁당국이 이를 심사에서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엔비디아의 영국 ARM 인수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안보문제를 들어 반대 의견을 내놓자 경쟁당국도 이를 충분히 검토해 심사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영국 경쟁당국은 이 인수를 놓고 본심사에서 승인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2단계 심층심사에 들어갔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는 아마존과 구글, 테슬라,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술기업들도 기술독점 우려를 들어 각 나라 경쟁당국에 반대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ARM은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자산시장의 95%를 점유한 시장의 절대 강자다. 글로벌 기술기업들은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한 뒤 설계자산 활용을 제한하는 문지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인수합병 장벽이 높아지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수합병건들이 무사히 종결될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삼성전자도 이런 시장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올해 실적발표회를 진행할 때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순현금을 활용해 3년 안에 의미 있는 수준의 인수합병을 추진하겠다”고 되풀이하면서 반도체 인수합병의 ‘큰손’이 될 것을 예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만큼 인수합병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빠르게 추진하기 위한 기반도 갖춰졌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이 지속되면서 잠재적 매물들의 몸값이 뛰고 있어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를 다루는 전문매체 샘모바일은 최근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회사 NXP의 인수를 추진해 왔으나 계획을 재고하고 있다”며 “NXP의 요구 가격이 최대 680억 달러(80조 원가량)까지 치솟자 거래규모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런 대규모 인수는 의심의 여지 없이 글로벌 경쟁당국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는 점도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2분기 말 연결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단기 유동화가 가능한 매출채권 등을 모두 합친 현금 동원능력이 146조 원에 이른다. 게다가 회사채 발행 등으로 일부 자금을 외부에서 수혈하거나 주식교환을 포함하는 방식 등 순수 현금의 유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거래구조를 짤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NXP 인수는 예상되는 거래규모만 놓고 보면 다소 부담이 있을지언정 아예 불가능한 거래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당국의 인수 심사는 장담하기 어렵다. 실제 미국 팹리스 퀄컴도 2016년 NXP의 인수를 추진했으나 중국 경쟁당국이 심사를 진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불승인해 거래가 무산된 사례도 있다.

삼성전자는 대규모 인수합병과 관련해 가격 문제에 더해 글로벌 심사의 높은 장벽까지 넘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반도체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NXP 대신 스위스 아날로그 반도체회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수나 미국 아날로그 반도체회사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경영권 포함 일부 지분의 인수로 선회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차량용 반도체시장에서 점유율은 NXP보다 낮지만 IT기기나 가전 등 다양한 전자제품에 쓰이는 반도체도 함께 생산한다. 삼성전자의 다양한 완제품(세트)사업들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8월31일 장 마감가격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NXP의 3분의 2 수준에 그친다는 점(NXP 시가총액 60억 달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40억 달러)도 매력적 요인이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글로벌 아날로그 반도체 점유율 1위 회사로 시가총액이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초대형 회사다.

그러나 최대주주인 사모펀드그룹 뱅가드의 지분율이 9%대에 불과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의 지분 인수라면 삼성전자로서는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