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SK하이닉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연구개발비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2% 늘어난 2조44억 원을 투입했다. SK하이닉스 반기 연구개발비가 2조 원대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하이닉스는 상반기 영업이익 4조189억 원을 벌어들였는데 이 가운데 절반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은 셈이다.
연구실적을 보면 대부분 D램에 집중됐다. 연구과제 5건 가운데 4건이 D램 제품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4세대 10나노급(1a) LPDDR4 8Gb 제품이다. 이는 SK하이닉스 최초로 극자외선(EUV) 공정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로 7월부터 양산됐다. 하반기 스마트폰 제조사들에 공급된다.
반도체는 회로가 가늘어질수록 전력 효율성 등 성능이 좋아진다. D램도 마찬가지다. 회로폭이 10나노 후반대(1세대, 1x)에서 초반대(4세대, 1a)로 좁혀지면서 성능이 개선되는 과정에 있다.
10나노는 머리카락 두께의 5천 분의1 정도다. 이처럼 미세한 회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노광공정에서 기존보다 파장이 짧은 광원인 극자외선을 사용해야 한다.
다만 극자외선 기술을 반도체 양산에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값비싼 반도체장비를 써야 하는 데다 신기술이 사용되는 만큼 높은 수율(생산품 대비 양품 비율)을 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석희 사장은 이런 난제를 극복하고 극자외선 기반 D램사업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한 만큼 빠르게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장이 이처럼 D램 경쟁력 향상에 힘쓰는 까닭은 SK하이닉스의 수익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에서 모두 글로벌 주요업체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D램 점유율은 29.0%, 낸드 점유율은 12.3%로 추산됐다. 각각 세계 2위와 4위를 차지했다.
다만 SK하이닉스 전체 메모리반도체사업의 수익 자체는 D램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낸드부문은 지난해 영업손실 1조 원 중후반대를 봤고 올해 2분기에도 적자 수천억 원대를 낸 것으로 추산됐다.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D램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D램은 최근 극자외선 공정 도입 등으로 기술경쟁이 치열해진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마이크론의 경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앞서 4세대 10나노급 D램 양산을 밝히며 한국 반도체기업을 추격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함께 세계 3대 D램기업으로 꼽히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 사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D램에서는 더 이상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선도자(First Mover)’로서 시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업계를 선도하는 기술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말한 이유다.
물론 이 사장이 낸드사업을 자리매김하기 위한 기술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결정한 일이 대표적이다. 인수규모는 90억 달러로 국내기업 인수합병 역대 최대기록을 새로 썼다.
인텔은 데이터센터 투자 등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관련해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계기로 낸드 기반 SSD사업에서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이 사장도 지난해 SK하이닉스 3분기 실적발표에 직접 등장해 2021년 말 1차 인수가 마무리되면 SSD사업 관련 설계자산 등 인텔의 기술을 가져올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또 4월 128단 낸드를 기반으로 기업용 SSD 신제품을 개발해 제품군을 확충하기도 했다. 이는 상반기 연구개발 과제 5개 가운데 유일하게 D램이 아닌 낸드 관련 제품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기업용 SSD분야에서 완전한 제품군을 갖추게 된 만큼 앞으로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되는 SSD 시장에서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와 더불어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가 마무리되면 중장기적으로 D램에 이어 낸드에서도 선두권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