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중공업 중심' 두산그룹 사업구조 다시 바꾸나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두산그룹의 뱃머리를 돌리는 것일까.

두산그룹이 20년 동안 주력으로 삼아왔던 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을 중공업 중심으로 재편한 주역이다. 그러나 중공업 계열사들이 한꺼번에 어려움에 처하는 등 한계를 보이자 유통사업에 다시 나서는 등 두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는 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면세점사업에 맹렬하게 도전하고 있는데 이번 도전이 두산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 면세점 도전과 중공업 구조조정

두산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이 14일 예고돼 있다. 면세점사업은 두산그룹이 20년 만에 소비재와 유통사업에 새로 진출하려는 시도다.

두산그룹은 면세점사업 경험이 없지만 반드시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겠다는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박용만 회장은 면세점사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박 회장은 사재 100억 원과 그룹자금 100억 원을 합해 동대문미래창조재단을 출범하고 동대문상권을 부흥하겠다고 약속했다. 동대문은 두산그룹 면세점 후보지인 두산타워가 있는 곳이다.

박 회장이 전면에 서면서 두산그룹은 모든 역량을 면세점사업 도전에 쏟고 있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 중공업사업의 구조조정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부실사업 정리에 그치지 않고 알짜사업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중공업사업 전체를 슬림화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두산그룹은 방위산업 계열사인 두산DST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11월 안에 투자안내서를 발송하고 12월 예비입찰을 진행하는 일정을 짜놓고 있다.

두산DST는 2008년 두산인프라코어 방위산업부분을 물적분할해 만든 회사로 매각가격은 7천억~8천억 원으로 예상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공작기계사업도 분할해 매각에 나서고 있다. 공작기계사업이 두산인프라코어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곳이지만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분할한 회사의 지분 49%를 매각한다는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경영권까지 매각하는 방안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은 최근 주요계열사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두산그룹의 미래를 위한 사업포트폴리오 재구축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두산그룹은 해외매출 비중이 과거 소비재 기업이었을 때 10% 수준에 불과했지만 중공업으로 재편하면서 60%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해외매출 비중이 47%로 떨어지면서 중공업 계열사들은 유동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세계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두산그룹이 기대고 있는 대규모 인프라사업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산그룹 내부에서 위기의식이 높다. 중공업 일변도의 사업구조가 경영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현금 창출능력이 높은 소비재사업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중공업 일변도의 사업구조로 지금과 같은 경기변동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의 면세점사업 도전도 이런 중공업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무관하지 않다.

  박용만, '중공업 중심' 두산그룹 사업구조 다시 바꾸나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열린 동대문 미래창조재단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박용만, 중공업 중심 두산그룹의 선회


박용만 회장은 20년 동안 두산그룹 변신을 이끌어 온 주역이다.

박 회장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두산그룹 전략기획실장과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으면서 두산그룹을 탈바꿈하는 데 앞장섰다. 두산그룹의 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는 박 회장 경영의 핵심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박 회장은 당시 인수합병 전담조직이었던 두산그룹 기업금융프로젝트팀을 이끌면서 수많은 기업을 사고팔았다. 당시 40대였던 박 회장의 경영감각과 사업수완은 주목을 받았고 박 회장은 ‘미스터 M&A’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 회장이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지금 두산그룹의 핵심계열사로 자리잡은 회사들의 인수를 결정했다. 다른 한편에서 한국네슬레, 한국코닥, 한국3M 등 그룹의 성장을 이끌어온 소비재 회사들을 정리했다.

두산그룹은 이런 구조조정 노력으로 외환위기를 다른 기업들보다 순조롭게 넘길 수 있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한 외형성장까지 이뤄냈다.

이런 점에서 박 회장이 면세점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더욱 주목을 받는다. 그동안 추진해 온 중공업 중심에서 방향선회를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누구보다 두산그룹의 중공업 사업구조에 애착이 있는 인물이 박용만 회장”이라며 “그렇기에 두산그룹의 면세점사업 도전은 단순히 신사업 진출 이상의 무게감이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20년 만의 소비재사업 도전인 면세점 사업지로 동대문 두산타워를 내세웠다. 동대문은 1896년 한국 최초의 근대적 상점이자 두산그룹의 모태인 박승직상점이 문을 열었던 곳이다.

두산그룹이 이곳에서 면세점사업을 시작하면 두산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구축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띄게 된다.

박 회장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동대문 마케팅’으로 내세우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지난달 26일 동대문미래창조재단 출범식에서 “동대문은 서민의 애환과 100여 년 넘는 상공업 역사를 가진 가치 높은 곳”이라며 “동대문의 터줏대감인 두산이 그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중공업 중심 결정한 매킨지의 유산 어떻게 되나

두산그룹이 중공업으로 주력사업을 전환하게 된 데는 경영컨설팅회사인 매킨지의 컨설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매킨지는 두산그룹에게 “늙은 회사는 도전정신이 안 생긴다”며 “소비재에서 산업재로 바꿔라”고 조언했다.

  박용만, '중공업 중심' 두산그룹 사업구조 다시 바꾸나  
▲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부회장.
매킨지는 과거 LG전자 휴대폰사업 컨설팅 등의 실패로 국내에서 명성에 큰 흠집을 냈다. 이 때문에 최근 대기업 컨설팅사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 와중에도 두산그룹 중공업 전환은 매킨지 컨설팅의 성공사례로 꼽혀 왔다.

하지만 두산그룹이 중공업에서 유통과 소비재로 다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경우 매킨지는 또 다시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다.


그룹 임직원들은 “매킨지 때문에 그룹이 위기에 처하게 됐다”며 매킨지 컨설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매킨지 칭송’이 ‘매킨지 비난’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두산그룹에 매킨지의 유산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두산그룹 최고경영진에 매킨지 출신 경영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모두 두산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박용만 회장과 손발을 맞췄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리에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부회장이다. 비모스키 부회장은 맥킨지에 24년 동안 몸담았던 인물로 2006년 두산에 영입돼 10년 동안 사업총괄임원을 역임했다. 비모스키 부회장은 구조조정 전문계열사인 DIP홀딩스 대표이사를 맡으며 사업분야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그런데 비모스키 부회장은 최근 해외사업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모스키 부회장이 맡던 사업총괄은 동현수 두산 사장이 맡게 됐다. 동 사장은 면세점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새로운 두산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맥킨지 출신으로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를 맡았던 김용성 사장은 이미 물러났다. 김 전 사장은 맥킨지 최초의 한국인 파트너로서 두산그룹 컨설팅을 맡았다. 2001년 두산그룹의 컨설팅회사인 네오플럭스 대표를 거쳐 두산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 전 사장은 올해 초 두산인프라코어 경영구조 개선작업의 성과가 미진한 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 밖에도 두산그룹에 이상훈 두산 총괄기획 사장과 이상하 네오플럭스 대표이사 사장 등 매킨지 출신이 경영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박용만 회장은 아직까지 매킨지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는 올해 매킨지에 한국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박 회장의 추천이 대한상의와 매킨지의 협업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