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
A씨는 원양 화물선의 선원이다. A씨는 바다가 좋아서 선원이 됐지만 최근에는 항해가 마냥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배 위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초고속인터넷, 무선통신을 즐길 수 있는 권리는 어느새 ‘통신기본권’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기본적 권리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 권리를 모두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초고속인터넷망이 가장 발달했다는 한국에서도 도서·산간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유선통신망을 활용한 초고속인터넷 인프라가 완전히 구축되지 않아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하기 힘든 지역이 많이 남아있다. 기지국 하나 없는 망망대해 해상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어디에서나 기가급 속도의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및 스페이스X CEO다.
◆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디지털격차 해소를 천명하다
일론 머스크가 경영하고 있는 우주개발 전문기업 스페이스X는 13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스타링크 위성을 저궤도에 올려놓는 임무를 맡은 9번째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날 발사된 팔콘9 로켓을 통해 스페이스X는 지표면에서 500km 남짓 떨어진 저궤도에 모두 540개의 스타링크 통신위성을 올려놓게 됐다.
스타링크 프로젝트는 저궤도에 수많은 통신위성을 쏘아올려 세계 어디서나 기가급의 초고속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스페이스X의 우주사업 계획이다.
현재 위성통신에 사용되는 통신위성은 약 3만6천km 상공의 정지궤도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에 따른 통신 지연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스타링크 위성은 저궤도(약 500km)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 표면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는 위성통신의 장점을 누리면서도 일반 유선 광통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통신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도 중계기 하나만 설치한다면 얼마든지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프로젝트가 인터넷이 빠른 지역과 인터넷에 연결하기 힘든 지역 사이에 발생하는 ‘디지털격차’를 완전히 없애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반도가 통일된 뒤를 생각해보자.
현재 북한 대부분 지역은 초고속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하다.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서 초고속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사업자들이 북한 지역에 광통신망을 매설하는 등의 인프라 구축을 완료해야 한다.
하지만 스타링크 프로젝트가 완료된다면, 별도의 통신망 구축작업 없이 중계기만 설치한다면 자유롭게 빠른 속도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사용 유무에 따른 정보격차를 간편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셈이다.
스페이스X는 늦어도 올해 말에는 북미지역에서 스타링크의 시범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론 머스크 CEO의 계획에 따르면 빠르면 2021년부터 세계 어디서나 스타링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선원 A씨 역시 태평양 한가운데서도 집에서 사용하는 초고속인터넷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 13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로켓발사대에서 스페이스X의 팰콘9 로켓이 발사되는 모습. <스페이스X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
◆ ‘빛은 충분히 빠르지 않다’, 금융업계를 뒤집어 놓을 20밀리초(ms)의 차이
통신업계에는 ‘빛은 충분히 빠르지 않다’는 말이 있다. 통신속도가 빨라진다 하더라도 물리적 거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빛의 속도로 데이터가 전달된다 해도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지역 사이에서 통신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133밀리초(ms)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타링크와 같은 저궤도 통신위성을 활용하면 두 지점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확 줄여줄 수 있다. 또한 장거리 해저케이블의 특성에서 오는 통신속도의 손실 등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장거리 통신속도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이는 장거리 통신속도가 매우 중요한 금융업계에서 커다란 효용을 낼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발생하는 가격의 변동에 주식 매매 프로그램이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최대 주식시장인 런던과 뉴욕의 수많은 광통신 회선이 개설돼 있는데 이 회선들을 활용해 낼 수 있는 장거리 통신의 최대 응답속도는 약 60밀리초 정도다.
일론 머스크는 스타링크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이 두 증권시장을 이어주는 통신망의 응답속도를 약 40밀리초 정도 까지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밀리초는 약 100분의 2초다. 증권시장에서는 상당한 가격의 변동이 발생할 수 있는 시간이다.
스타링크가 저렴한 초고속 인터넷을 지구 곳곳에 공급해 디지털격차를 해소하는 역할 뿐 아니라 고액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우주쓰레기와 천체 관측 방해, '디스토피아의 시작' 시선도
다만 일론 머스크 CEO의 희망찬 메시지와는 달리 스타링크 프로젝트가 지구를 '디스토피아'로 이끄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우려는 '우주쓰레기' 문제다. 만약 일론 머스크의 구상대로 1만2천 대의 통신 위성이 저궤도에 깔린 뒤 만약 이 위성들이 서로 충돌하여 폭발하거나 해서 저궤도에 수많은 우주쓰레기들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우주쓰레기들이 또 다시 다른 위성과 충돌하는 등의 연쇄 작용을 일으켜 저궤도가 우주쓰레기로 뒤덮이는 '케슬러 신드롬'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케슬러 신드롬은 지구 궤도가 우주쓰레기로 뒤덮여 인류가 현재 활용하고 있는 모든 인공위성을 전혀 이용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미래 모델로 천문학자들은 케슬러 신드롬이 발생한다면 인류의 과학문명이 20세기 초반으로 퇴보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타링크 통신위성이 유발하는 '빛 반사' 때문에 천문학자들이 천체를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 통신위성을 발사한 뒤 관측되기 시작한 '스타링크 트레인' 때문에 이미 천체 관측이 어려워졌다는 불만도 세계 천문학계에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스타링크 트레인은 스타링크 위성들이 지구 궤도를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기차가 지나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붙여진 별명이다.
일론 머스크는 이와 관련해 스타링크 통신위성의 자세를 바꿔 빛 반사를 최소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천체 망원경 역시 궤도에 띄워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 스타링크 프로젝트 개념도. <스타링크 홈페이지> |
◆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와 스타링크의 공존은 가능할까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들을 포함해 세계 통신업계는 스타링크의 등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초고속 위성통신이 상용화 되더라도 이는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초고속 유선통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게 될 것”이라며 “오히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게 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스타링크의 속도는 기존 초고속 유선통신 속도와 비슷하거나 살짝 빠른 정도이기 때문에 현재 초고속 유선통신이 원활하게 서비스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굳이 스타링크 서비스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 통신사가 기존 고객을 뺏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통신사로서는 자연재해 등으로 유선통신이 끊어졌을 때 스타링크를 백업 통신망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등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게 된다.
또한 최근 국내 통신사들이 선도하고 있는 5G통신 등 초고속 무선통신과 비교하면 스타링크의 속도가 오히려 떨어지기 때문에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 5G통신을 활용한 B2B사업과 스타링크 서비스가 경쟁하게 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오히려 위성통신과 관련된 국내 중소IT기업들에게는 커다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위성통신용 안테나를 생산하는 인텔리안테크, 위성 관제 시스템과 위성에서 발신한 정보를 지상에서 처리하는 소프트웨어 등을 공급하는 쎄트렉아이 등은 ‘스페이스X 관련주’로 꼽히며 최근 주식시장에서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