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미국 법인의 주요 보직에 닛산 출신 임원들을 속속 영입해 앉히고 있다.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의 체포사건 뒤 닛산 고위 임원진들의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현대차가 인재 영입에 뜻밖의 수혜를 보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 (왼쪽부터)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 사장, 랜디 파커 미국판매법인 판매담당 부사장, 로버트 그래프턴 딜러개발 담당 전무. 모두 닛산 출신이다. |
2일 현대차에 따르면 올해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HMA)이 영입한 임원 가운데 닛산 출신이 도드라진다.
9월30일자로 현대차에 딜러개발 담당 전무로 합류한 로버트 그래프턴은 닛산과 닛산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 등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딜러 네트워크 구축 등에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호세 무뇨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5월1일), 랜디 파커 판매담당 부사장(5월30일) 등의 영입 사례까지 더하면 올해만 닛산 출신의 고위임원을 세 번째 영입하게 된 것이다.
디자인 분야로 시선을 넓히면 10월부터 기아디자인센터장으로 부임하는 카림 하비브 전무 또한 인피티니 수석 디자인 총괄을 맡았던 닛산 출신이다.
그동안 현대차는 해외조직의 임원들을 선임할 때 제너럴모터스(GM)나 BMW,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기업 출신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올해처럼 북미조직에서 네 차례나 같은 회사 출신 인물을 데려온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11월 갑작스레 촉발된 이른바 ‘카를로스 곤 사태’의 후폭풍으로 닛산 출신 임원들이 동요하면서 자연스레 닛산 출신 임원의 이직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를로스 곤 사태’는 르노와 닛산, 미쓰비시자동차의 회장을 맡은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이 2018년 11월19일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특수배임 등의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된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 |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을 포함에 당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체제에서 각 계열사의 다수 고위임원진들이 일본 검찰에 불려가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호세 무뇨스 사장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호세 무뇨스 사장은 원가 절감에 철저해 ‘코스트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의 핵심측근이다.
미국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무뇨스 사장은 닛산에서 전사성과총괄(CPO)을 맡았던 서열 높은 간부였는데 검찰조사를 받은 뒤 동료들에게 "‘심각한 숙고기간’을 가진 결과 닛산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차는 4월에 무뇨스 사장의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 영입을 발표했고 그는 5월부터 현대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무뇨스 사장의 합류 이후 약 한 달 만에 영입된 랜디 파커 부사장 역시 인피니티에서 미국 네트워크 구축과 마케팅 전략을 담당한 인물인데 무뇨스 사장의 주선으로 현대차로 이직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카림 하비브 기아디자인센터장의 영입도 이러한 닛산 임원들의 이탈 움직임과 무관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닛산에 남아있는 고위경영진의 동요는 해외언론에도 이미 포착된 바 있다.
산케이신문은 4월 “다니엘 스킬라치 닛산 총괄 부사장이 조만간 사임할 것”이라며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의 체포 이후 임원들의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