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이 비소세포 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의 단독임상을 추진한다.
이 사장은 혁신신약을 개발하지 않는 제약사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고 유한양행의 신약 연구개발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1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다국적 제약사 얀센과 공동진행하고 있는 레이저티닙 임상과는 별도로 2020년 1분기부터 단독임상을 추진한다.
폐암은 암세포의 크기에 따라 소세포암과 비소세포암으로 나뉘는데 폐암 환자의 85%가 비소세포 폐암이다.
레이저티닙이 치료 목표로 하는 비소세포 폐암은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등 각종 유전자가 원인이 돼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기존 치료제로는 고치기 힘들다.
유한양행은 비소세포 폐암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어 2018년 레이저티닙을 얀센에 1조4천억 원 규모로 기술수출하는 성과를 냈다.
국내 제약기업의 기술이전 계약 가운데 역대 2번째 규모였고 단일 항암제로는 최대 규모여서 유한양행의 신약 연구개발 능력이 새롭게 부각됐다.
유한양행과 얀센은 현재 레이저티닙을 다른 항암제와 같이 투여하는 병용요법의 글로벌 임상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얀센과 공동진행에 만족하지 않고 단독임상을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단독임상을 통해 유한양행의 신약 연구개발 능력을 혁신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혁신신약은 기존에 치료제가 없는 신약을 말한다.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 시장을 선점해 안정적 수익을 만들 수 있다.
이 사장은 유한양행의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6년을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글로벌 제약사로 재탄생하는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 사장은 최근 열린 제2회 서울바이오이코노미포럼에서 “혁신신약을 실제로 개발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형태로 계속 노력하다 보면 2026년 혁신신약을 통해 글로벌 제약사의 끝자락에는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독임상에는 투자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유한양행은 레이저티닙 단독임상에 1천억 원의 연구개발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장은 “유한양행의 영업이익이 500억 원 정도인 상황에서 1천억 원 비용이 든다는 사실이 걱정스럽지만 이것이 회사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해 기꺼이 투자를 결정했다”며 “2020년부터 활발히 글로벌 임상3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단독임상을 통해 레이저티닙을 2차 치료제에서 1차 치료제로 개발 가능성을 넓히고 적응증을 확장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1차 치료제는 암 진단 뒤 가장 먼저 시도하는 치료법이다. 1차 치료제로 항암치료가 실패하면 그제야 2차 치료제를 사용한다. 1차 치료제로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표준치료법보다 환자에게 좋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레이저티닙이 경쟁 치료제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타그리소는 2015년 2차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얻은 뒤 2017년 다시 1차 치료제로 지위를 얻었다.
레이저티닙은 임상1상과 임상2상에서 타그리소와 유사한 수준의 효능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고용량에서 레이저티닙의 효과가 더 우월했고 안전성에서도 우수성이 확인됐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레이저티닙이 1차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경쟁 치료제보다 우수성이 확인된 만큼 글로벌에서 레이저티닙의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