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몽구 '양적성장' 토대 위에 정의선 '질적성장'으로 대전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실질적 재건’과 ‘제2의 도약.’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중국과 미국에서 전략적 방향성으로 내세운 목표다.

정몽구 회장이 과거 현대차그룹의 외형 확장에 주력하며 글로벌 5위의 완성차기업을 만들었다면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은 미래차시대에 대비하며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 현대기아차, 미국과 중국에서 '체질 개선' 목표

25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앞으로 현대차와 기아차는 세계 주요시장에서 판매를 무리하게 확대하기보다 수익성 확보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체질 개선에 주력한다.

현대차그룹이 내실경영에 집중하는 것은 연간 글로벌 판매량 800만 대로 정점을 찍었던 2015년 이후 이어지고 있는 기조다.

하지만 22~23일 현대차와 기아차가 2분기 실적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같이 내놓은 ‘미국시장 턴어라운드 및 판매 전망’ ‘인도시장 전망 및 추진전략’ 등에서 이런 방향성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실적 발표를 통해 주요 시장의 미래전략을 짤막하게 설명하긴 했었으나 별도 문서를 공개적으로 배포한 것은 이례적이다.

현대차는 자료에서 “미국에서 중장기적으로 무리한 외형성장을 지양하고 시장과 고객 중심으로 판매 체질을 개선해 수익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재고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플릿판매 비중과 인센티브를 줄여 경영지표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플릿판매란 관공서와 기업, 렌터카업체 등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차량을 대량 판매하는 것으로 개인을 대상으로 한 소매판매보다 수익성이 낮다.

판매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2016년 기준 26%였던 플릿판매 비중을 올해 말까지 산업평균 수준인 18%까지 낮추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세웠다.

현대차는 미국 판매에서 제2의 도약을 추진하기 위해 권역본부 중심의 책임경영을 강화해 생산과 판매, 물량, 손익 등 모든 부문을 최적화하는데 집중하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기아차 역시 판매수치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기아차는 중국시장의 향후 전략을 놓고 “핵심 볼륨 신차 K3, 셀토스 등을 통해 판매 회복을 추진할 것”이라면서도 “단기적 실적 개선보다 중국의 실질적 재건을 위해 향후 3년에 걸쳐 근본적 체질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신차를 쏟아내는 방향으로 대응하기보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차근차근 헤쳐나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기아차는 이를 위해 중국에서 브랜드와 상품, 가격 전략 등을 재정립하는 작업부터 추진하기로 했다.

기아차는 인도에 신규 진입하는 브랜드인 만큼 ‘고객 최우선 딜러 운영’에 집중해 2022년까지 인도 내 톱5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도약 위해 '질적 성장'에 집중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과거 현대차그룹의 ‘양적 성장’ 기조에서 탈피해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시장 업황이 만만치 않은 상태인데다 자동차산업의 흐름도 매우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과거와 같은 전략으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정몽구 '양적성장' 토대 위에 정의선 '질적성장'으로 대전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구 회장이 그룹을 이끌던 시기만 하더라도 세계 각국에 거점을 세워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는 방법으로 외형 확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생산을 효율화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미래차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 수석부회장이 올해 초 시무식을 직접 주재하며 “우리 그룹은 회장님의 탁월한 리더십과 품질경영, 현장경영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자동차산업에서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5 자동차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앞으로는 글로벌 사업경쟁력을 고도화해 수익성을 강화하고 지속성장을 위한 내실을 다질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원희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이 2월에 열린 기업설명회 ‘CEO 인베스터 데이’에 직접 나서 전기차와 수소차 확대, 미래기술 대응력 강화 등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것도 질적 성장을 추구하기 위한 전략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차는 2004년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200만 대를 넘은 뒤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2015년에 500만 대에 근접하는 판매량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판매량이 뒷걸음질해 지난해 판매량은 460만 대 수준에 머물렀다.

기아차 역시 2004년 연간 글로벌 판매량 100만 대를 넘어 2015년 300만 대까지 고공성장했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영업이익률은 한때 10% 수준을 보였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두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