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1945년생 올해 우리나이로 일흔다섯 살 동갑내기다.
한때 재계 8위 그룹의 총수로, 또 샐러리맨의 신화로 각각 불렸던 점에서 두 기업인이 최근 겪고 있는 불명예스러운 처지를 보면 씁쓸함이 절로 든다.
윤 회장이 지난 몇 년 동안 보여줬던 코웨이를 향한 순애보는 대단했다.
윤 회장은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아직은 짝사랑이지만 꼭 들고 오겠다”고 말하며 의지를 보였다.
결국 윤 회장은 올해 코웨이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꿈을 현실로 만든 노장의 저력은 어찌 보면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는 당시 “내 자식을 되찾은 기분”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3개월 천하에 그쳤다. 코웨이를 인수한 뒤 다시 매각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개월이다. 처음부터 얼마나 무리한 인수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박삼구 전 회장도 올해 “내 모든 것과 같다”는 아시아나항공을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떠나보낸다. 금호산업을 인수하며 아시아나항공을 되찾은 지 3년 반 만이다.
박 전 회장 역시 아시아나항공, 더 나아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되찾겠다는 욕심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금호타이어까지 되찾아 그룹 재건의 신화를 쓰려 했으나 결국 두 곳 모두 잃었다.
박 전 회장은 한때 재계 8위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으나 이제는 중견그룹만 손에 쥐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을 좋아해 그룹이름에 아시아나까지 넣었지만 조만간 이름도 바꿔야 할 판이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의 빛과 그림자, 굴곡을 모두 겪었던 두 회장의 성과와 공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박 전 회장은 2002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1년 만에 외환위기 이후 이어져 온 그룹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 등 경영능력을 발휘했고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을 인수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8위까지 올려놨다.
아시아나항공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의 역할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윤석금 회장 역시 재계에서 보인 무게감이 남다르다.
윤 회장은 세일즈맨 혹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가난하게 태어나 방황하는 청년기를 보냈지만 27세부터 영업에서 재능을 꽃피웠고 재계 서열 30위권까지 웅진그룹을 키워냈다.
지금도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 패기와 활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 사람이 50여 년 동안 회사원, 경영인, 그룹 총수로서 일궈낸 성과가 과욕이 불러온 판단착오로 초라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내 것이었던 기업, 내가 키워낸 기업,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기업을 향한 애착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 판단보다는 재기를 향한 욕심이 앞선 탓에 치뤄야 하는 수업료는 결코 값싸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의 몫이 됐다. 지난해 불거진 이른바 ‘기내식 대란’에서도 승객들의 원성을 온몸으로 받아낸 건 결국 현장에 있던 직원들이었다.
지금도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을 앞두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지난 수 년 동안 비상경영으로 줄일 수 있는 건 다 줄였는데 최근 희망퇴직까지 실시했다.
코웨이 역시 마찬가지다. 새 주인을 맞은 지 3개월 만에 또 다시 새 주인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사모펀드 품에서 구조조정 걱정으로 불안에 떨었는데 또 다시 고용불안에 떨게 됐다.
박삼구와
윤석금, 산전수전 다 겪은 두 베테랑 경영인의 노욕이 남긴 상처들이 결코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