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동부그룹 경영권 포기할까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지난 1월 경기도 광주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신년 임원 워크숍에서 "믿음과 용기, 열정을 가지고 일에 집중해서 신화를 만들자"고 주문했다. <뉴시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3조 원을 마련하는 자구안을 내놓고도 버티기를 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지난해 말 내놓은 자구책을 신속히 이행하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김 회장은 되레 동부그룹에 대한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압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압박 때문에 제값을 받기 어려운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오히려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김 회장은 왜 자구안 이행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김 회장의 오너십 집착이 일을 그르치고 있다고 경고한다. 자칫 제2의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나 STX그룹 강덕수 회장처럼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김 회장은 좀체 자구안에 속도를 붙이지 못한다. 김 회장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 채권단 “제2의 동양그룹 STX그룹이 되려는가”


동부그룹은 최근 채권단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당진발전을 패키지매각이 아닌 제한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하자고 제안했다. 포스코와 수의계약하기 전에 인천공장과 당진발전 매수에 희망을 보이는 곳이 있으니 먼저 경쟁 입찰을 해보자는 것이다. 동부그룹은 수의계약의 경우 배임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동부그룹은 또 동부메탈 매각을 늦춰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하기도 했다. 대신 5천억 원 규모의 추가 자산 매각에 나서겠다고 제안했다. 동부그룹은 동부팜한농 울산 비료공장 부지 62만㎡와 동부메탈 대전기술원 등을 매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동부그룹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배임은 문제될 것이 없고 오히려 인수 희망자가 있다는 동부그룹의 말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쟁 입찰은 매각을 지연시켜 시장의 불안감만 증폭시킬 수 있다”며 원래 계획대로 매각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KDB산업은행 관계자도 “현재로선 포스코와 협상을 빨리 진행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라며 김 회장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11월 김 회장이 내놓은 고강도 자구안을 믿고 1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내준 채권단이다. 하지만 반년이 다 되가는데도 구조조정의 가시적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다른 금융회사들은 지난 3일 회의를 열고 동부그룹에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한진그룹은 자산 매각을 추진하거나 오너가 경영권을 내려놓으면서 구조조정에 힘을 보태는데 반해 동부그룹은 그렇지 않다”며 비판했다. 채권단은 “동부그룹이 자산 매각을 방해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지금은 팔 것과 살릴 것을 가리는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김 회장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조영제 금감원 부원장은 최근 동부제철과 동부건설 사장 및 부사장을 불러 자구안을 신속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주요 자산 매각을 통해 당면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라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2월에도 동부그룹 고위 임원들에게 같은 내용을 주문했던 적이 있다.


금융당국은 김 회장에 대한 산업은행의 불만도 함께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앞서 “김준기 회장이 지나치게 오너십에 집착한다”며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동양의 현재현 회장이나 STX의 강덕수 회장도 매각을 주저하다가 모두 잃었다”며 “김준기 회장은 경영권에 미련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김 회장이 계속해서 자산매각에 소극적이라면 추가적 자금지원은 힘들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경영권 포기할까  
▲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는 동부제철 인천공장 <사진=동부제철 홈페이지>

◆ 김준기는 자구안을 얼마나 이행했나


김 회장은 자구안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동부그룹의 한 관계자는 “자구안을 내놓은 지 겨우 5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며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왜 채권단이 구조조정을 압박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성화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된 자구계획은 동부익스프레스뿐이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이달 KTB 프라이빗에쿼티(PE)에 동부익스프레스 매각을 완료할 경우 3천억 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하게 된다.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을 팔겠다고 했다. 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당진항만, 동부발전당진, 동부익스프레스, 동부팜한농 유휴용지 등을 매각하겠다고 내놓았다. 김 회장은 계열사 유상증자를 위해 1천억 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이를 통해 모두 6조3천억 원에 이르는 차입금을 2015년까지 2조9천억 원 수준으로 줄여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대상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매각이 완료된 자산은 동부익스프레스 밖에 없다. 동부하이텍은 복잡한 지분문제로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다.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당진발전은 패키지매각 방식을 놓고 산은과 동부그룹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동부그룹이 동부팜한농을 팔겠다고 나섰지만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기존에 발표한 자구계획부터 먼저 이행하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자구안 이행이 늦어질수록 김 회장에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단 부채비율이 문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동부건설의 부채비율은 600%에 육박한다. 동부메탈과 동부제철의 부채비율도 각각 348.8%와 273.0%를 기록했다. 올해 부채비율을 낮추지 못한다면 채권단으로부터 추가 자금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높은 부채비율은 추가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재무구조 개선이 늦어짐에 따라 동부그룹 계열사들은 이미 한 차례씩 신용등급 강등을 겪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11월 동부제철의 신용등급을 ‘BBB-’로 한 단계 강등했다. 지난 3일 나이스신용평가가 동부메탈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로 강등했고 동부CNI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렸다. 특히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동부그룹의 자구안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즉각 신용등급 강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만기일이 다가오는 계열사들의 회사채도 김 회장에게 걱정거리다. 동부그룹은 올해까지 6천억 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그런데 올 7월까지 막아야 할 회사채만 4900억 원이다. 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지고 계열사의 사내 유보금도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서 과연 자산매각 없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다.

◆ 김준기는 왜 자구안 이행에 속도를 내지 않는가


동부그룹이 갈수록 위기의 늪에 빠져드는 데도 김 회장은 왜 상대적으로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김 회장은 매각 과정에서 제값을 받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산업은행이 패키지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당진발전이 대표적 사례다. 김 회장과 동부그룹은 산업은행의 패키지매각에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패키지인수를 제안해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이 때문에 인천공장의 자산가치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경쟁입찰을 하면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고 겨우 매각이 1~2개월 늦어질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이 동부메탈 매각을 서두르는 대신 동부팜한농 부지를 먼저 매각하겠다는 것도 제값받기를 위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동부메탈을 매각하면 제값을 받기 어렵다”며 “대신 동부팜한농 부지는 즉시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땅”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 회장 입장에서 한푼이 아쉬운 처지이기 때문에 자구안 이행이 약간 늦어지더라도 가능한 최대한 높은 가격에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이런 입장이 결국 동부그룹의 경영권을 끝까지 지키려는 김 회장의 집착을 가리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구안 이행을 더디게 진행하면서 채권단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지원을 받아내겠다는 전략도 있는 것으로 본다. 김 회장은 채권단의 자금 지원이 늘면 그만큼 자산 매각을 덜 해도 된다.


김 회장이 약속했던 사재출연을 계속 미루는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채권단은 김 회장에게 오너 일가의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사재출연 약속과 함께 동부그룹 특수관계인이 가지고 있는 동부메탈 지분 80%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회장은 여전히 지분 매각에 나서지 않고 있다.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의 경우 김 회장 스스로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채 오히려 임직원들의 참여만 강요해 논란을 샀다. 김 회장은 동부메탈의 지분 매각을 연기해달라며 채권단에 요청까지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김 회장 일가가 매각할 수 있는 동부화재 지분은 7%다. 이를 매각하면 28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김 회장은 아직 경영권에 대한 미련이 많은 듯 보인다. 김 회장은 사재 출연을 약속했으면서도 이런 지분들은 내놓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