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헬기 수출과 관련해 급하게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저녁식사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이사 사장은 2018년 12월6일 서울 한국항공우주산업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한국항공우주 산학위원회 정책토론회’에서 “필리핀 헬기 수출이 막바지 전투 중”이라며 인사말만 마친 뒤 급히 자리를 떠났다.
 
[오늘Who]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의 필리핀 수출 무산 뼈아프다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이사 사장.


김 사장은 2018년 9월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사업(APT) 수주에서 고배를 마신 뒤 한국형 기동헬기(KUH) 수리온을 필리핀에 수출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자신감을 보이며 수출 기대감도 키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리온의 필리핀 수출 역시 성사하지 못했고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완제기 수출사업은 '설상가상'인 상황에 놓였다.

7일 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수리온의 필리핀 수출과 관련해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는 “필리핀 공군이 블랙호크를 기종 선정해 계약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계약 체결 전까지 변수가 남아있다고 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방산산업은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진행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역시 필리핀 정부가 애초 2017년 말 캐나다의 벨412 헬기를 구입하기로 했던 결정을 뒤집으면서 수리온 수출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가 공식적으로 블랙호크 구매 의사를 밝힌 만큼 다시 한 번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방산업계의 중론이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최근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최종적으로 블랙호크를 구매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전달했다.

필리핀 수리온 수출사업 규모는 25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계약 뒤 납품이 2~3년에 걸쳐 이뤄지는 만큼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이번 사업을 통해 한 해 매출 800억~1200억 원가량을 올릴 수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한 해 연결기준으로 3조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큰 규모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필리핀 수리온 수출사업은 상징성과 사업 확장성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만큼 김조원 사장은 최종 결과가 아플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이 이번 수리온 수출을 성사했다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처음으로 헬기를 수출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필리핀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수리온 수출을 넓힐 계획을 세웠는데 이번 결과가 주변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오늘Who]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의 필리핀 수출 무산 뼈아프다

▲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018년 6월5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수리온 성능을 직접 점검하고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 사장 개인적으로는 경영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또 다시 잃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가 아쉬울 수 있다.

김 사장은 20년 넘게 감사원에서 공직생활을 한 관료 출신으로 경영 경험이 없어 2017년 10월 취임할 때부터 자유한국당 등으로부터 '경영능력이 약점'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수리온의 필리핀 수출사업은 김 사장 취임 이후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단독으로 협상을 진행했다는 점 등에서 김 사장의 경영능력을 입증할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이번 사업이 성사했다면 김 사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사수주위원회에도 힘이 실릴 수 있었다. 김 사장은 수주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8년 12월 조직개편을 통해 전사수주위원회를 만들었다.

수리온의 필리핀 수출이 한때 성사 직전까지 갔다는 기대감이 일었다가 2018년 7월 마린온 추락사고로 지연됐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김 사장의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2018월 6월 한국을 방문해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수리온에 직접 탑승하며 수출 기대감을 키우기도 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필리핀 수출 결과와 별개로 지속해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수리온 수출활동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는 수리온 수출과 관련해 “방산사업 특성상 특정 국가를 말할 수 없다”면서도 “헬기 수요가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수리온 마케팅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