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그룹의 경영 쇄신을 놓고 다급한 상황에 내몰렸다.
조 회장은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경영 참여 선언에 따라 앞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주주 감시와 간섭을 받는 것은 물론 경영권 자체를 잃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맞을 수도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한진칼 지분을 확보해 단숨에 2대주주에 오르면서 조 회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경영 쇄신 압박을 더욱 거세게 받게 됐다.
증권가에서는 KCGI가 3월에 있을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의결권 대결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진칼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로 한진그룹 지배구조에 최상단에 있는 회사다.
한진칼은 대한항공과 진에어, 한진의 최대주주로 각 회사의 지분을 각각 29.96%, 60%, 22.19%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칼의 경영권이 한진그룹 전체의 경영권과 직결된다는 뜻이다.
조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은 한진칼 지분의 28.95%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칼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벌어진다면 KCGI와 조회장측은 지분의 8.35%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을 각자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이 국민연금을 설득하는 데 가장 효과적 수단은 대한항공의 경영 쇄신안을 하루 빨리 내놓는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조 회장 일가에게 대한항공의 경영 쇄신을 촉구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는 올해 6월 “한진그룹은 경영관리체계 개선 등을 포함해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한항공, 진에어 등 한진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오너 일가의 전횡 등으로 비난 여론이 높았던 점에서 사외이사 권한 강화 등을 통한 오너 일가 견제장치 마련, 내부 신고제 도입 등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국민연금은 같은 달 대한항공에 '국가기관의 조사 보도 관련 질의 및 면담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보내 대한항공의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 대한항공을 대표할 수 있는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 비공개 면담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
7월 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뒤에는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할 일순위로 대한항공이 꼽히기도 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주주활동 등으로 수탁자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하는 행동 지침을 말한다.
그뒤 국민연금은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간섭한다는 시선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주요 주주의 제안에 따라 의결권 대결이 본격화되고 오너 리스크가 한진칼의 기업가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이 서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조 회장이 표대결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설득해야 하는 주주는 국민연금뿐만이 아니다.
‘갑횡포(갑질)’ 사건, 조 회장의 횡령·배임죄 수사 등으로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서 등을 돌린 소액주주들 역시 조 회장이 경영 쇄신안을 언제, 어떻게 내놓을지 주시하고 있다.
한진칼은 지분의 상당 부분이 소액주주다. 한진칼 소액주주들은 한진칼 지분의 58.38%를 보유하고 있다. 소액주주 다수가 KCGI에 의결권을 위임한다면 조 회장이 표대결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한진그룹이 국민적 공분을 샀던 것을 감안하면 많은 소액주주들이 KCGI에 의결권을 위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소액주주 일부는 올해 5월 제이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를 통해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퇴진을 위한 소송 청구를 추진하기도 했다.
KCGI는 자회사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15일 한진칼 지분 9%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KCGI는 공시에서 지분 확보 목적을 두고 ‘경영 참여’라고 못 박았다.
KCGI는 이번 지분 확보로 한진칼 지분 8.4%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을 제치고 단숨에 2대주주로 뛰어올랐다. 1대주주는 지분의 17.8%를 보유하고 있는 조 회장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