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서경배, 시대의 변곡점에서 아모레퍼시픽 앞날 고민하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연합뉴스>

“‘나는 경험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고객을 나타내는 데 더 적합한 시대가 됐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올해 4월 정기조회에서 임직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이전과 달리 고객들이 제품을 쓰면서 느끼는 주관적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서 회장은 평소 고객 경험을 우선함으로써 화장품업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시장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이런 흐름에 뒤쳐졌다고 바라본다. 주가도 연일 곤두박질하고 있다. 

30일 금융정보회사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이날 아모레퍼시픽을 놓고 리포트를 발표한 증권사 17곳 가운데 15곳이 목표주가를 기존보다 크게 낮췄다.

그룹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도 마찬가지다. 아모레퍼시픽그룹 리포트를 발표한 증권사 9곳 모두 목표주가를 내렸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사면초가에 몰렸다”며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모두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고 파악했다. 

중국 소비자들이 고급 화장품 제품을 선호하면서 대중적 화장품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와 에뛰드가 고전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소비자들이 멀티브랜드샵과 온라인샵에서 주로 화장품을 구매하며 아모레퍼시픽그룹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모레퍼시픽그룹 매출의 80%가량을 책임지는 주요 자회사 아모레퍼시픽도 어려움에 빠져있다.

이선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이 브랜드가 노후화하고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을 만한 혁신 제품이나 브랜드가 없어 국내사업에서 위기에 빠져 있다”며 “중국에서는 현지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경쟁이 심화했고 중국 주요 브랜드인 이니스프리는 자연주의 콘셉트가 희소성을 잃었다”고 파악했다. 
 
[오늘Who] 서경배, 시대의 변곡점에서 아모레퍼시픽 앞날 고민하다

▲ 아모레퍼시픽그룹 로고.


서 회장으로서는 뼈아플 수밖에 없는 지적들이다.

서 회장은 “마스카라만 빼놓고 다 써 봤다”고 말할 정도로 아모레퍼시픽그룹 제품을 직접 써보고 유행을 살펴보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연구원과 박 연구원 등의 지적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제품이나 마케팅전략이 고객의 눈높이보다 아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서 회장은 이런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최근 그룹의 임원인사와 조직 개편을 앞당겨 진행했다. 임원인사 및 조직 개편의 키워드는 특이성과 면세, 디지털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 관계자는 “특이성을 갖춘 브랜드와 혁신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브랜드 마케팅과 영업부문을 분리해 조직 단위를 구성했다”며 “국내외 면세채널의 특수성과 디지털 혁신 가속화를 이뤄내기 위해 조직에 e커머스디비전을 새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중국에서 가장 호조를 보이는 브랜드는 고급 화장품 브랜드인 설화수와 대중적 브랜드인 이니스프리다.

국내 면세점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등의 수요에 힘입어 설화수의 매출이 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고급 브랜드 수가 적다. 또 이니스프리는 국내외에서 희소성을 잃고 있으므로 마케팅에 힘을 싣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부문에서는 오프라인 원브랜드숍이 온라인 화장품회사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만큼 국내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역량을 끌어올리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 회장은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지만 단기적 성장의 돌파구가 되긴 역부족이다.  

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이 2020년까지 진출 국가 숫자를 현재 16곳에서 30곳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이는 중장기적 계획인 데다 시장 진출에 따른 초기 비용 부담이 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수익성에 당장 부담을 안길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바라본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아세안에 진출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짓고 있지만 이 역시 2020년이 완공 시점이라서 갈 길이 멀다. 

아모레퍼시픽그룹과 아모레퍼시픽 주가도 현재 바닥을 치고 있다. 

30일 아모레퍼시픽그룹 주가는 6만2100원,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15만6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주가와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2014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제품만 잘 만들면 팔리던 ‘양의 시대’, 기술이 담긴 상품이 되어야 팔리던 ‘질의 시대’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독보적 감성을 담은 ‘명품’만이 팔리게 되는 ‘격(格)의 시대’로 바뀌는 변곡점에 서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격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에서 선두 지키기에 고전하고 있다. 서 회장은 이런 변곡점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비즈니스포스트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