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발주시장이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은 국내 건설사의 최대 수주 지역이지만 2010년 이후 저가 수주와 납기 지연 등으로 대규모 손실을 안겨준 지역이기도 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장으로 평가된다.

국내 건설사는 과거 대규모 손실을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중동시장에서 예년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다시 열리는 중동 수주시장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는 하반기를 시작으로 2019년부터 본격화할 중동 지역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시 열리는 중동 건설시장, 국내 건설사 '수익 낼 수 있다' 자신감

▲ (왼쪽부터) 박동욱 현대건설 대표이사, 임병용 GS건설 대표이사,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대림산업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광물회사인 마덴(Ma’aden)과 9억 달러 규모의 뉴암모니아프로젝트를 맺었다.

현대건설은 올해 안으로 25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 유정 물 공급시설 수주를 따내고 내년에는 30억 달러 규모의 연결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수주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 SK건설, 대우건설 등 국내 대형 건설사는 현재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35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가솔린&아로마틱스(GAP) 프로젝트의 기술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라진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동을 비롯한 글로벌 발주 물량은 지역과 공종 모두 지난해보다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동 발주시장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이라크,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중심으로 올해보다 내년에 더 큰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동은 국내 건설사가 2014년 이후 후퇴한 해외 건설 수주를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공략해야 하는 시장으로 꼽힌다.

국내 건설사의 해외 건설 수주는 2010년 716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17년 290억 달러로 크게 줄었는데 중동 수주 감소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건설사는 2010년 중동에서만 472억 달러의 일감을 따냈지만 2017년에는 146억 달러를 수주하는 데 그쳤다.

국내 건설사는 살아나는 중동 발주시장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 수주 성사 여부 만큼이나 주요한 요인으로 수익성 관리가 꼽힌다.

중동 지역은 2000년대 들어 해외건설 수주 확대에 1등 공신 역할을 했지만 저가 수주, 납기 지연 등으로 2010년 이후 국내 건설사들의 수익성 악화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몇몇 대형 건설사는 여전히 과거 중동 수주에 따른 부담으로 실적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건설은 3분기 시장의 기대보다 낮은 실적을 냈는데 기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준공정산 손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박형렬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3분기 삼성엔지니어링의 깜짝 실적을 놓고 “3분기 아랍에미리트 카본블랙(CBDC) 정유 프로젝트를 포함한 해외사업에서 유의미한 손실처리가 없었다”며 "악성 해외사업의 마무리를 확인한 데 3분기 실적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내 건설사는 과거처럼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될 중동 수주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 과거와 다른 국내 건설사의 수주 전략

증권업계에서는 과거 손실을 통해 얻은 교훈,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국내 상황, 건설사 자체 경쟁력 강화 등 크게 3가지 이유로 국내 건설사의 중동사업의 수익성이 과거와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열리는 중동 건설시장, 국내 건설사 '수익 낼 수 있다' 자신감

▲ (왼쪽부터) 박상신 대림산업 건설사업부 대표이사, 김형 대우건설 대표이사, 안재현 SK건설 대표이사.


중동시장은 사업 자체의 위험성뿐 아니라 정치적, 국제적 요인 등 다양한 변수를 지니고 있어 국내 건설사가 앞으로 진행할 사업에서 손실을 입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 대규모 손실을 통해 얻은 값비싼 교훈을 바탕으로 중동사업의 위험 요인을 줄이기 위해 힘쓰는 점은 중동사업 수익성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GS건설, SK건설 등이 합작회사(조인트벤처)를 설립해 입찰을 따낸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공사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내 건설사는 과거 단독으로 수주 경쟁에 임하면서 저가로 수주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때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대규모 프로젝트 발주를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컨소시엄 수주는 각 건설사가 장점을 지닌 분야에 집중할 수 있고 경쟁강도를 단독 수주일 때보다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라진성 연구원은 “경험을 통한 관리능력 향상은 눈으로 검증이 안 되는 막연한 이야기 같지만 국내 건설사는 과거 손실 경험을 통해 입찰 능력, 설계 능력, 계약·협상 능력, 현장 관리 능력 등이 체계적으로 향상됐다”고 바라봤다.

중동 발주처도 과거 경험을 통해 저가 수주를 점차 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 연구원은 “저가 입찰은 대부분 공기 연장, 성능 불량, 시공사 무책임 등으로 프로젝트 가동을 늦추면서 발주처에도 손실을 줄 때가 많았다”며 “최근에는 발생 가능한 위험 요인들을 사전에 건설단가에 포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파악했다.

국내 영업환경이 바뀐 점도 국내 건설사가 중동 저가 수주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건설사는 2010년을 전후로 찾아온 국내 주택시장 침체에 중동 등 해외시장에서 살 길을 찾으면서 경쟁적으로 해외 수주를 늘렸다.

국내 건설사는 현재 국내 주택시장 호황 등으로 중동 수주의 필요성을 10년 전보다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계열의 정유·화학업체가 내년부터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 무리하게 해외 수주를 따낼 요인도 적다.

국내 건설사가 플랜트사업에서 경쟁력을 강화한 점도 10년 전과 다른 점으로 평가된다.

국내 건설사는 과거 단순 EPC(설계·조달·시공) 사업자에 머물렀으나 최근에는 기본설계(FEED, Front End Engineering Design), LNG(액화천연가스)액화플랜트 등 고부가가치사업으로 진출을 시작했다.

기본설계와 LNG액화플랜트 등은 진입장벽이 높아 그동안 국내 건설사의 사실상 불모지로 평가됐는데 삼성엔지니어링은 최근 아랍에미리트 선형알킬벤젠(LAB) 프로젝트의 기본설계 기술입찰에 초대됐고 대우건설은 나이지리아 LNG액화플랜트 프로젝트 예비사업자에 선정됐다.

라 연구원은 “대우건설이 나이지리아 LNG액화플랜트사업을 따내면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초로 원청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며 “단순 EPC사업자로 평가되던 한국 건설사의 새로운 도전은 앞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