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이 트위터를 하는 까닭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아 셀카를 찍으며 야구경기를 즐기고 있다.<뉴시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또 한 명의 ‘스타 CEO’다. 인기가 많다. 트위터나 매스컴으로 그를 접하는 대중들은 물론이고 두산 직원들에게도 가깝고 친숙한 존재다. 대기업 총수를 좋게 보지 않는 진보 인사들 중에서도 박 회장을 좋게 평가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박 회장은 모두에게 잘 보이는 법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통의 달인'이라는 말을 듣는다.

박 회장이 젊은이들에게 유명세를 탄 것은 트위터를 통해 재치있는 얘기를 던지면서부터다. 박 회장은 팔로어가 16만 명을 웃도는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만우절에 임직원을 골탕 먹인 일,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아 직원에게 돈을 빌린 일 등을 격의 없이 올린다. 젊은층들이 많이 쓰는 이모티콘이나 줄임말도 거리낌 없이 쓴다.

트위터로 실없는 농담만 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두산이 삼성을 상대로 승리한 직후 트위터에 "부산서 수녀님이 애들 옷이 모자란다 하셔서 부탁했더니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흔쾌히 작년보다 더 많은 옷을 준댔는데…. 난 감사의 표시로 야구를 이겨버렸으니 참"이라고 올리기도 했다.


박 회장은 야구장을 자주 찾는다. 야구장에서 치킨을 먹는 사진을 찍혀 한동안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지난 2010년엔 삼성과의 경기에서 임태훈 선수가 부상투혼을 펼친 끝에 두산이 승리를 거두자 트위터에 “임태훈을 업어주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얼마 후 박 회장은 트위터에 임태훈 선수를 업은 사진과 함께 “약속한대로 업어줬습니다 ㅠㅠ 허리 아포요 ㅠㅠ 무쟈게 무거워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박 회장은 SNS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고 균형감각을 갖추는데 도움이 돼 즐기는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트위터 경영이란 말에 대해선 트위터를 경영에 활용하지는 않는다고 부인했다.

그의 트위터 소통은 자신과 두산그룹의 이미지를 함께 끌어올렸다.

그는 2009년 3월 ‘lunch'라는 짤막한 한마디로 트위터를 시작했다. 그가 형제의 난으로 형 박용성 회장과 함께 동반 사퇴한 지 3년 4개월이 지난 후였다. 2005년 11월 박 회장이 그룹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며칠이 지나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이듬해인 2006년 7월 그는 그룹의 비자금 조성, 횡령, 분식회계 혐의가 인정되면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가 경영에 복귀한 것은 2007년 3월이다. 사면된 지 한 달 만에 두산중공업과 지주사 두산의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형제의 난 이전과 비슷한 위치로 두산그룹으로 돌아왔다. 이 때 형제의 난을 촉발한 박용오 전 회장과 원래 두산그룹의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을 제외한 모든 형제들이 경영일선에 서게 된다.

특히 박용성, 박용만 형제의 복귀에 대해 시민단체의 반발이 있었으나 혼란 속에서도 그들의 복귀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그 뒤 박 회장이 트위터를 통해 친근하고 젊은 회장님, 재밌는 회장님이 되면서 그와 두산그룹에게 덧씌워져 있던 부정적 이미지는 점차 걷히기 시작했다.

두산그룹은 박 회장이 직접 만든 '사람이 미래다'라는 카피와 함께 젊은 기업,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얻었다. 채용설명회를 직접 돌고 사내 게시판을 통해 직원들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박 회장의 이미지는 두산그룹의 상징이 됐다.

2009년 11월 박용오 전 회장이 자택에서 자살했다. 두산그룹은 당시 “전직 회장으로서 최대한 예우를 갖춰 장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자살에 대해서 성지건설의 경영난 때문이지 두산그룹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물리쳤다.

박 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이 죽은 지 두 달여밖에 지나지 않은 이듬해 2010년 1월, SBS '나는 한국인이다-출세 만세'에 직접 출연해 자신의 일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여타의 재벌 회장님과 다른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박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2012년 3월 박용오 전 회장의 자택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박 전 회장의 유언에는 “자신의 두 아들을 두산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달라”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를 잃은 박 전 회장의 두 아들을 두산 가문에서 거둬들일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많았지만 자택을 비롯한 모든 재산은 경매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