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가 2016년 11월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보툴리눔 균주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 공개' 미디어 설명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평소 보톡스(보툴리눔톡신) 제품을 우유와 비교한다. 좋은 우유를 만들려면 품질 좋은 젖소가 있어야 하는데 보톡스 제품의 균주가 마치 젖소와 같다는 것이다.
정 대표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보톡스균주를 놓고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결국 법정에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국내 1호 보톡스 박사’라는 명성이 깎일 수도 있고 미국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30일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을 상대로 소장을 접수하기로 했다. 대웅제약 역시 균주의 출처가 의심스러운 것은 오히려 메디톡스라며 맞서는 등 다시 진실공방에 불이 붙었다.
메디톡스는 전 직원이 대웅제약에 보톡스 균주와 제조공정을 금전적 대가를 받고 팔아넘겼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대웅제약이 개발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 위험을 피했다는 것이다.
보톡스 제품은 제조기술이 있어도 균주가 없으면 생산이 불가능하다. 이례적으로 원료의 출처를 놓고 실랑이가 일어난 이유다. 전 세계 7개 제품 가운데 3개가 국내 제품이며 메디톡스가 ‘메디톡신’을 출시한 이후 휴젤과 대웅제악이 뒤이어 각각 ‘보툴렉스’와 ‘나보타’를 내놨다.
정 대표는 나보타균주의 염기서열이 메디톡스 것과 완전히 같은 만큼 훔친 것이 확실하다며 1년째 끈질긴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로 인정만 된다면 메디톡스는 국내 소송결과를 근거로 미국에서 대웅제약 보톡스제품의 판매금지를 신청할 수 있고 로열티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송이 대웅제약의 승리로 끝날 경우 메디톡스는 보톡스시장 후발주자인 대웅제약의 미국진출을 막으려고 근거없는 비방을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역소송을 당할 각오도 해야 한다.
실제로 대웅제약은 메디톡스가 미국 진출에 난항을 보이자 대웅제약의 발목을 잡기 위해 이번 실랑이를 시작했다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4조 원 규모인 전 세계 보톡스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최대 수요처다. 국내 경쟁이 심화하면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휴젤은 앞다퉈 미국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웅제약이 가장 빠르게 임상 3상을 끝내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심사결과만 남겨뒀다. 반면 메디톡스는 2013년 엘러간과 액상형 보톡스 ‘이노톡스’의 판권계약을 맺고 3년이 넘게 흘렀지만 아직 미국 임상을 진행하지 못했다.
소송의 결과에 따라 메디톡스가 받을 타격이 만만치 않다보니 정 대표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입증이 쉽지 않은 문제인 데다 이번 다툼을 계기로 메디톡스의 보톡스균주 출처까지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대표는 “순풍이든 역풍이든 목적은 진실”이라며 공개토론까지 요구하는 등 강경한 태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최초로 보톡스 제품을 개발했다는 자존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보툴리눔독소 전문가’다. 1992년 카이스트에서 국내 최초의 보톡스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아 선문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진 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끊기자 궁여지책으로 메디톡스를 창업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정 대표는 평소 바이오사업은 투자와 더불어 ‘끈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메디톡스의 성공은 수십 년 동안 인내하며 연구한 결과라는 것이다. 창업하고 첫 보톡스제품을 출시하기까지 6년이 걸렸는데 그 기간을 기술력의 확신으로 버텼다고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