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AI 확산에 따른 고용·소득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서면서 AI 산업 성장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기업의 비용 분담과 ‘인공지능세’ 도입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 생성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일자리와 소득 불평등 충격에 대응하고 AI 산업 성장의 성과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서면서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책 논의 과정에서 AI로 수익을 얻는 기업도 직업전환교육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에 필요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면 이른바 ‘인공지능세’ 도입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별도 과세가 기업들의 AI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하는 만큼 정책 현실화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시선도 나온다.

4일 정보통신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직속 기본사회위원회는 10월부터 전문가 20명과 국민숙의단 대표 20명 등 모두 40명으로 정책의제기획단을 구성해 ‘AI 전환에 따른 기본사회 공론화’에서 나온 의견을 정책의제와 전략과제로 구체화한다.

이번 공론화의 목적은 AI 성장 가능성과 양극화 위험을 함께 살펴보고 △소득보장과 기본서비스 △일자리와 미래노동 △재원 마련과 재투자·재분배 △AI의 보편적 활용 등을 둘러싼 정책 방향을 만드는 데 있다. AI 산업 육성을 넘어 AI가 노동시장과 소득분배에 미칠 충격까지 정부 정책의 범위에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기업들의 관심은 AI 전환에 필요한 재원을 누가 부담할지를 둘러싼 논의에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사회위원회가 9월19일부터 20일까지 진행한 국민숙의단 토론회에서 새로운 조세 부담을 만들기에 앞서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고 재정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AI로 수익을 얻는 기업에 과세하는 방안이 재원 마련 방안 가운데 하나로 제시됐다.

국민숙의단 내부에서도 AI 확산에 따른 분배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AI 도입 확대가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데 동의한 국민숙의단 비율은 숙의 전 79%에서 숙의 뒤 85%로 6%포인트 상승했다.

AI와 인구구조·기후위기 등 대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사회와 같은 새로운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는 데는 전체 숙의단의 91%가 동의했다.

AI를 단순히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기술 전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자리와 소득 충격, 그리고 성장의 성과를 어떻게 배분할지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는 요구가 공론화 과정에서 확인된 셈이다.

이 논의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정책의제기획단은 국민숙의단이 마련한 미래비전과 정책방향을 토대로 정책의제와 전략과제를 담은 정책제안서를 만들고 11월 기본사회위원회에 전달한다. 이에 앞서 10월 말에는 기획단이 구체화한 내용을 국민숙의단 223명이 다시 검증한다.

기본사회위원회는 이후 관계부처 협의와 조정을 거쳐 제안 내용을 신규 정책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필요하면 후속 공론화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국민숙의단에서 나온 ‘AI 기업 과세’가 그대로 정부 정책으로 채택된다고 보기는 이르다.

이번 공론화 자체가 정해진 정책 대안을 놓고 찬반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이 미래 비전과 정책의제 자체를 발굴하는 ‘의제 형성형 공론화’이기 때문이다.

AI 기업만을 대상으로 별도 세금을 만들면 정부의 AI 산업 육성정책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네이버와 SK텔레콤, 카카오, KT를 비롯한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은 AI 모델과 데이터센터, AI 에이전트 등 관련 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정부도 AI 경쟁력 강화를 국가 성장전략으로 추진하고 있어 기업의 투자 부담을 높이는 새로운 과세제도를 도입할 경우 AI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 대통령직속 기본사회위원회가 9월19일부터 20일까지 개최한 ‘AI 전환에 따른 기본사회 공론화’ 국민숙의단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기본사회위원회>

해외에서도 AI 확산으로 발생하는 노동시장 충격과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둘러싸고 비슷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진은 AI 전환에 따른 불평등에 대응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AI 자체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세제가 기업의 생산 결정을 왜곡해 생산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을 특정 산업이나 경제활동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AI 확산 과정에서 일자리 대체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돼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경우에는 자동화에 대한 과세가 정당화될 여지도 있다고 봤다.

IMF 연구진은 2024년 6월 ‘생성형 AI 성장의 이익 확대를 위한 재정정책의 역할’ 보고서에서 “생성형 AI와 로봇, 다른 형태의 노동 대체 기술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며 “특정 기술의 과세 대상을 실제로 정의하기 어렵고 비슷한 자산의 명칭을 바꾸거나 AI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