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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전쟁 그림자] 트럼프 정부 통상 압박 희생양되나, 원화 절상 가능성에 한국 경제 '시계제로'](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5/20250519151809_112114.jpg)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6일 UAE 아부다비 대통령궁인 카스르 알 와탄에 도착해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자동차를 비롯한 주력 수출 산업이 미국발 관세로 부담을 안은 상황인데 환율 변수까지 더해져 불확실성이 짙어질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18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과 무역 협상을 앞둔 국가 가운데 일부가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를 절상하라는 압박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 시각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자국 제조업 보호와 물가 안정을 위해 무역 상대국에 사실상 환율 절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달러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도록 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미국에서 제조해 수출하는 제품은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이 올라간다. 미국의 심각한 무역적자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일단 약달러가 아닌 강달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외환 시장에서는 미국이 약달러를 염두에 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통화옵션 시장에서 2026년 달러화가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데 걸린 돈은 2020년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키트 저크스 외환 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화 가치 하락을 선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전망했다.
미국 당국이 관세와 환율 논의를 묶어서 진행할 수 있다는 당국자 발언도 나왔다.
베선트 장관은 18일(현지시각) NBC뉴스 인터뷰에서 “모든 국가가 선의로 협상에 임하길 기대한다”며 “협상을 원치 않으면 관세는 지난 4월2일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단기 환율 등락을 넘어 트럼프 정부의 ‘정치적 의제’라는 점에서 장기적, 구조적 환율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 삼아 환율을 통상협상의 무기로 꺼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원화 약세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환율과 무역수지 불균형을 직접 연결지었던 전력이 있다.
더구나 미국이 최근 대중국 추가 관세를 90일 유예하고 '무역 전쟁 휴전'에 돌입해 한국과 같은 동맹국을 향한 압박 강도가 거세질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최근 지지율이 저공 비행하는 데다 16일 무디스로부터 국가신용등급을 Aa1으로 한 단계 강등당해 확실한 경제적 성과가 절실히 필요하다.
![[환율전쟁 그림자] 트럼프 정부 통상 압박 희생양되나, 원화 절상 가능성에 한국 경제 '시계제로'](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5/20250519152721_147833.jpg)
▲ 2017년 2월23일 대만 타이베이에 위치한 한 은행에서 창구 직원이 미화 100달러와 1천 대만달러 지폐를 나란히 놓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과거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과 환율 협상을 통해 달러화 평가 절하를 힘으로 밀어붙인 적이 있다.
레이건 미국 정부는 1985년 9월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과 협상해 이들 국가의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절하하는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 냈다.
특히 미 정부의 암묵적 관세 위협으로 당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240엔에서 4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이는 일본 수출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켜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40년 전 전례를 되풀이해 각국을 상대로 관세와 환율 등 묶어 강하게 압박하는 전략을 펼친다면 이번에는 한국이 1985년 일본처럼 미국 정부의 제물이 될 수도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 기획재정부와 미 재무부 고위 관계자는 이달 5일 이탈리아 밀리노에서 만나 외환시장 운영 원칙과 같은 환율 논의를 시작했다.
양국 재무부는 4월24일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환율 정책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를 따르는 수순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산업 비중이 높아 미국의 약달러 정책이 본격화한다면 환차손 타격이 불가피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4월 한국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감소했다. 트럼프 정부가 발효한 철강·알루미늄 및 수입차 관세 영향이라는 시각이 중론이다.
여기에 환율 변수까지 작용하면 대미 수출산업이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외화 결제 비중이 높거나 에너지 수입에 기반한 유틸리티 및 항공 산업은 일부 수혜를 기대할 수도 있다. 외화로 자금을 많이 조달하는 금융업 또한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이자부담이 줄어드는 '재미'를 볼 수 있다.
이에 20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국 대표단 및 미국 무역대표부(USTR) 사이 관세와 관련한 국장급 실무 협의에서 환율 이야기가 오고 갈 가능성도 떠오른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16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관세 협상을 마친 영국의 사례를 봤을 때 미국은 그 나라의 모든 이슈를 묶어 함께 타결하는 일종의 ‘원스톱 쇼핑’을 하고 있다”며 “우리도 협의 과정에서 여러 이슈가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요컨대 한미 관세 협상과 환율 협상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트럼프 정부의 압박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 수출 경쟁력 및 내수 경제 향방이 결정될 공산이 크다.
로이터는 “중국이나 인도가 미국과 협상을 서두르면서 한국과 일본, 대만은 반도체 및 자동차 공급망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라며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