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이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19%로 취임 뒤 최저치를 기록했다. 오는 10일 겨우 임기 반환점을 앞둔 상태에서 낙제점인 국민 평가가 나온 것이다. 이는 내각책임제 국가라면 새로 선거를 치러야 할 정도의 수준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보수정당의 핵심 텃밭인 대구·경북에서조차 지지율이 18%에 머물렀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핵심 지지층조차도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니 그를 향한 국민적 신뢰가 사라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을 향한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논란'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과 '국민의힘 공천 개입' 같은 각종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 본인까지 직접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최근 통화 육성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이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나눈 통화 육성은 사흘 간의 한국갤럽 여론조사의 마지막 날인 지난 31일 공개됐다. 윤 대통령의 육성이 여론에 모두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앞으로 나올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더 떨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대통령실에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나와 내놓는 공천개입 관련 발언을 보면 여론이 돌아서기도 힘들어 보인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야당 국회의원들의 공천개입 의혹 추궁에 “법적·정치적·상식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며 "덕담 차원에서 건넨 말"이라고 맞섰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씨의 공천개입 의혹이 불거졌을 때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경선 이후 명씨와 소통을 끊었다는 해명을 내놨는데 당선된 날에 통화한 윤 대통령의 육성이 나왔다. 지난 3일에는 민주당을 통해 윤 대통령이 취임 뒤에도 명씨와 통화했다는 정황을 담은 녹취가 공개되기도 했다.
▲ 국민의힘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 명태균씨.
대통령실이 거짓말을 한 셈인 데다 국민 상식에 맞지 않는 해명(?)까지 내놓으니 오히려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지금 분노하는 국민들이 비상식적이라는 뜻인가"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공천개입 의혹의 당사자인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을 놓고 윤 대통령이 "김영선이 해줘라"라고 했던 육성이 사실은 "김영선이 회 줘라"라는 말이었다는 조롱이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회자될 정도다.
과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 당시 김영선 전 의원이 수산시장에서 오염수 방류가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알리려고 생선 수조의 물을 떠 마셨던 사실과 대통령실에서 '바이든 날리면'으로 전 국민을 듣기평가에 내몰았던 일을 빗대어 나온 말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법조인 출신 의원들 사이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을 놓고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건희 특검법안을 두 번이나 거부해온 전례로 볼 때 윤 대통령이 스스로 의혹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리라 생각하기 어렵고 결정적 추가 증거가 더 나오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의 위법 여부가 완전히 규명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국민적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윤석열 정부는 국정동력을 완전히 잃을 수밖에 없다. 당장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제대로 가동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3분기 0.1%에 불과했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개선할 정책이 나올 리도 만무하고 미국 대선 이후 급변할 국제정세에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온 국민의 노후 안정을 위한 연금개혁은 언감생심이다.
윤석열 정부는 공자가 말한 '양식' '군사' '신뢰'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전 국민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나라에 겨울이 오고 있다. 박창욱 정책경제·글로벌&기후에너지부장/부국장
(기사에서 인용한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10월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5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한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2024년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기준 지역·성·연령별 가중치(셀가중)가 부여됐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