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80년 넘은 '무파업 경영' 막 내리나, 이재용 '위기 리더십' 시험대

▲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조 위원장(사진)이 8일 유튜브를 통해 17일부터 쟁의행위에 들어간다고 발표하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조 유튜브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은 1938년 창립 이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더 큰 보상으로 노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는 비노조 경영을 고수했다.  

이병철 회장의 ‘비노조 경영’은 삼성의 제1 경영원칙이었다.

하지만 2018년 삼성전자 사무직 종사자 2명이 노동조합 설립을 신고해 인가받으면서 삼성 창립 이래 80년 만에 첫 노조가 탄생했다. 2019년에는 전국 단위 노조를 상급단체로 둔 전국삼성전자노조(이하 전삼노)가 출범하며 사실상 비노조 경영은 막을 내렸다.

이재용 회장은 2020년 5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에 따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비노조 경영' 포기를 공식화한 뒤 매년 전삼노와 임금협상을 진행해왔다.

전삼노는 사측과 올해 임금교섭을 진행했으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지난 3월 하순부터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 찬반 투표에 들어갔고, 8일 개표 결과 투표 참석 노조원의 97.5%가 찬성했다고 공개하는 동시 쟁의행위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전체 조합원 2만7458명 가운데 75.94%(2만853명)가 투표에 참여했으며, 이 가운데 97.5%(2만330명)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노조는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권을 확보했다.

전삼노 관계자는 “오는 17일 12시~13시에 화성 부품연구동(DSR 타워 1층 로비)에서 1천여 명이 모여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평화적 쟁의 행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전면 파업에 나선다면 삼성전자의 1969년 창립 이후 55년 만에 첫 파업이 된다. 또 그동안 삼성 경영의 철칙처럼 지켜졌던 비노조 무파업 경영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다만 전삼노는 아직 전면 총파업에 대해선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는 생산라인이 24시간 가동되어야 하는 특성상, 일부 라인만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춰도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노조에 가입했다는 삼성전자 직원은 “파업으로 반도체 라인 한 곳만 멈춰도, 사측이 완전히 협상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사의 미국 오스틴 사업장은 2021년 대규모 한파로 정전 사태를 겪으며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한 적이 있는데, 당시 발생한 금전적 피해만 3억5700만 달러(약 4500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됐다.

만약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최근 메모리반도체 업황 개선에 따른 삼성전자 실적 회복에 직접적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시장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영업이익 6조6천억 원의 ‘깜짝실적’을 거뒀다. 또 올해 약 35조 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6조5670억 원보다 5배 이상 증가할 것이란 예측이다.

다만 이 같은 실적은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회사 경영진이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았을 경우에 가능하다.

 
삼성 80년 넘은 '무파업 경영' 막 내리나, 이재용 '위기 리더십' 시험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회장이나 이건희 선대회장이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노사관계 속에서 ‘뉴삼성’을 이끌어가야 하는 위기 상황에 놓인 셈이다.

삼성에서 노조 목소리는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최근 삼성전자의 임금 정책에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급증하면서, 전삼노 조합원 수는 전체 직원의 20% 이상으로 늘었다. 

전삼노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사업부문 노조가 중심이 된 ‘삼성 초기업 노조’도 규모를 키우고 있다.

지난 2월19일 공식 출범을 선언한 삼성 초기업 노조는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부문 노조,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등 4개 노조가 참여했다. 조합원 수는 1만6천여 명으로 삼성 노조 가운데 두 번째로 크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조율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최근 조합원이 급증하면서 노조 세력이 커지고 있어, 과거와 달리 쟁의행위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