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마이크론이 대만에 꾸준히 첨단 메모리반도체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대만 타이중에 위치한 마이크론 반도체 생산공장. <마이크론>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마이크론이 대만에 첨단 미세공정 D램 및 인공지능 분야에 사용되는 HBM(고대역) 메모리 투자를 가속화하며 상위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한국 반도체기업을 추격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서두르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만 CNA는 11일 “마이크론은 대만이 최신 기술을 적용하는 D램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는 판단을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동휘 마이크론 대만법인 회장은 CNA와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며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와 향후 전망을 두고 긍정적 시각을 보였다.
그는 대만 정부가 지난 40년에 걸친 노력을 통해 지금과 같은 대규모 반도체 산업을 구축할 수 있었다며 미국과 유럽 등이 이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이크론은 최근 대만에 1γ(감마) 공정을 활용하는 D램 생산라인을 전 세계 최초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25년부터 양산을 목표로 두고 있다.
1γ D램은 EUV(극자외선) 공정을 활용해 생산하는 미세공정 기반 D램으로 생산성과 전력 효율 등 성능을 모두 기존 제품보다 개선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1γ D램 상용화를 목표로 두고 기술 개발 및 반도체장비 확보 등에 속도를 내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세계 D램 시장에서 한국 경쟁사들에 밀려 장기가 점유율 3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매출 기준 39.6%, SK하이닉스는 30.1%의 점유율을 각각 차지했고 마이크론은 25.8%를 기록했다.
마이크론은 반도체 생산 물량 측면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뒤처지고 있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 년 전부터 첨단 메모리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1β(베타)급 미세공정 D램 및 232단 3D낸드 메모리 생산을 한국 경쟁사보다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시설 투자를 늘리는 대신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해 왔다.
이번에 발표한 대만 투자 계획은 이러한 기술력 측면에서 한국 경쟁사에 우위를 확보하기 충분한 수준에 올랐다고 판단해 본격적으로 생산량 확대에 속도를 내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루 회장은 “HBM과 1β, 1γ 공정 반도체에 드는 비용은 대만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이 그만큼 반도체 생산 비용 측면에서 강점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미세공정 기반 D램은 앞으로 PC와 모바일 기기, 스마트카와 서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능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지며 꾸준한 수요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HBM 메모리는 엔비디아 등 기업의 인공지능(AI) 반도체와 함께 주로 쓰이는 고사양 메모리로 현재 반도체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마이크론은 향후 HBM 메모리에도 1γ 공정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 마이크론의 HBM3 2세대 메모리 기술 안내 이미지. <마이크론> |
현재 마이크론은 D램 생산라인을 모두 대만과 일본에서 운영하고 있다. CNA에 따르면 이 가운데 대만의 생산 비중은 약 65%를 차지한다.
최근 미국에 10년 동안 최대 1천억 달러(약 133조 원)를 들이는 투자 계획을 제시했지만 공장 구축이 마무리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격하기 위해 첨단 D램 생산을 빠르게 늘려야 하는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대만에 시설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일이 당연한 선택지로 꼽힌다.
대만은 최근 중국의 군사적 침공 위협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지역이다.
루 회장은 이와 관련해 언급하며 “(지정학적 리스크 관련한) 부정적 여론은 마이크론의 대만 내 사업 전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대만은 대체하기 어려운 지역”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론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보인 셈이다.
루 회장은 일본과 미국에도 반도체 시설 투자가 계속 이어지겠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유로 마이크론이 대만을 떠날 가능성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마이크론이 미국 기업인 만큼 중국이 큰 위험을 감수하고 마이크론을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마이크론이 시설 투자에 확신을 두고 속도를 낸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력 및 생산 능력을 따라잡으며 점점 더 강력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루 회장은 “대만은 정부 지원과 현지 협력사, 전문 인력 확보 등 측면에서 반도체 산업에 유리한 지역”이라며 “전 세계에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