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일중독 칭찬 사회서 살아남는 법, MZ세대는 안다

▲ 한국은 일 중독을 칭찬하는 사회다. 사진은 멀티태스킹을 하는 모습. < pixbay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은 일 중독을 권장하고 일 중독을 칭찬하는 사회다.

벅찬 할당량을 몰아주고 다 해내지 못하면 개인이 게으르고 못난 탓을 하는 곳, 가족 일을 깜빡해도 자기 건강을 혹사해도 일 잘하느라 그랬다면 다 끄덕끄덕, ‘그럴 수 있지’가 통하는 사회다. 

안 그래도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게으르지 마라, 더 빡세게 노오력을 하자’는 책과 강연에 몰두하며 죄도 없는 자신을 반성한다. 혹사하고 혹사시키고 혹사당하며 사는 게 익숙한 사회다.

나는 이런 한국에 철저히 적응해서 나를 쥐어짜 성과를 올리던 사람이었다. 주 100시간씩 일하던 워커홀릭, 여가시간이나 사적 인간관계 없이도 살 만한 줄 알았고 돈 벌고 성과 내는 게 제일 재밌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선 나를 추켜세웠고 나도 내가 잘 사는 줄만 알았다.

내 속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안 것은 마흔에 조기은퇴를 하고 쉴 시간을 가지면서다. 여유를 모르면 여유를 제대로 그리워하기도 힘든 법이더라. 쉬고 여유 부려본 적이 없었으니 그게 얼마나 활력소가 되고 휴식이 되고 행복이 되는지를 잘 몰랐던 것이다.
 
[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일중독 칭찬 사회서 살아남는 법, MZ세대는 안다

▲ 캐나다는 일이 일찍 끝나니 평일 오후에도 모임을 갖거나 산책, 취미생활이 가능하다. <캐나다홍 작가>

마흔 은퇴 후 캐나다로 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당연한 세상을 겪으면서 나는 이전의 삶이 세상 평균도, 정상도 아님을 알게 됐다.

여유 맛을 아는 지금 기준으로 다시 회상해 보자. 미소 띠고 친절한 학원강사 페르소나를 쓰고 살았지만 사실 내 속은 탈진 직전이었다. ‘망하면 어떡하지?’, ‘잘 안 되면 어떡하지?’, ‘실수하면 어떡하지?’를 걱정하느라 항상 긴장상태였다. 위염을 달고 살았고 잠도 푹 못 잤다.

와중에도 나는 일이 힘들다는 주변 사람들 얘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전쟁 때 총칼 피해 도망 다닌 사람들이 고생이지 요즘 시대 이런 일이 뭐가 고생인가’식 셀프 검열로 마음을 다잡았다. 

모두는 각자만의 고민이 있고 그들에겐 그게 가장 무겁다는 말을 당시엔 비웃었다. 절대적 고민, 절대적 고통이 아니면 다 가벼운 고통으로 치부해야 일중독 탓에 휴식조차 없는 워커홀릭의 삶을 겨우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되돌아보면 참 안타깝다.

아마 나는 일중독을 권하는 한국에서도 평균 이상의 ‘일 중독자’였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당시 나는 대부분이 사람들을 보며 ‘왜 이런 부분을 더 안 하지? 그럼 성과가 더 클 텐데’를 아쉬워했다. 어쭙잖게 이런 걸 더 챙겨보란 충고도 하던 젊은 꼰대였다.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서 모두가 일 하나에만 미칠 수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한국 직장 대부분의 상사, 특히 꼰대로 불리는 사람들, 또는 자수성가 오너들의 마음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직원들이 자기를 갈아넣기를 바라는 마음. 일 중독을 칭찬해주고 격려해 널리 퍼트리고 싶은 마음. 회사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충고하고 싶은 마음. 그들이, 그들 세대가 변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이 마음에 동화될 의무는 없다는 점이다.

인생에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고도 그 중에서 일 중독이 좋다면야 실컷 추구해볼 수 있는 거지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고 일 중독으로만 몰아가는 건 부당하다. 부당한 건 거부해야 새 문화가 싹튼다.

다행히 한국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특히 MZ세대는 내 세대와 많이 다르다고 한다. 그들은 워라밸을 중시하고, 부당한 업무나 기준 없는 성과급에 반발하며, 오픈된 소통을 원한단다. 

‘요즘 애들 주인의식이 없어서 큰일이야’라는 상사의 말에 ‘내가 주인도 아닌데 무슨 주인의식이냐, 주인만큼 벌게 해주든가’로 응수한단다. 듣는 내가 다 꿀맛이다.

한켠에서는 이런 MZ세대를 철없고 가볍고 책임감 없는 이들로 치부하기도 한다. 끈기 없고 이기적인 요즘 애들이란 타이틀도 붙였다. 90년대생은 도대체 어떤 애들이냐, 이해가 안 간다는 기성세대의 항변이다.

하지만 구글, 애플 등 잘 나가는 세계적 기업에서 아이디어 내고 재밌게 일하는 이들은 바로 이들 세대다. 이유 있고 납득이 가서 열정이 생기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다. 

수직 체계를 거부하고 수평성을 강조하는 오픈 마인드, 일이 곧 인생이라며 매몰되지 않고 자기 인생의 여러 보람 중 하나에 일을 포함시키려는 새로운 합리성의 등장이다. 내 세대보다 이들의 삶이 더 다채롭고 행복도가 높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도 유럽 선진국들도 이미 워라밸을 중시하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도 썼듯이 몇 주씩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이른 퇴근 후에 충분한 자유시간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러다 망하기는커녕 여전히 살기 좋은 국가 타이틀을 달고 있고 사람들 행복도는 한국보다 한참 높다. 한국도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니 경제개발 시대의 일만 챙기던 풍조도 바뀌는 게 마땅하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점토판에도, 이집트 피라미드 벽에도 쓰여 있다는 말이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란다.

바뀌는 세대, 달라진 합리성의 기준을 이해 못 하는 기성세대의 눈엔 이 변화가 버릇없는 일로만 보이겠지만, 그 걱정에 맞춰 후퇴할 필요는 없다. 동화되지 말고 전진하라, MZ세대여! 짝짝짝! 일 중독 권장 시대에서 맨 정신으로 살아남아 보자. 캐나다홍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