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 레시피] 두근두근 '오징어게임' 시즌2, 서바이벌 서사의 기원을 찾아서

▲ '오징어 게임'은 서바이벌 데스 게임 플롯을 한국식으로 풀어냈다. 사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생사가 갈리는 게임 장면. 

2024년 방영 예정인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출연자가 한 명씩 밝혀지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글로벌 OTT 넷플릭스를 통해 K콘텐츠의 저력을 전 세계 시청자에게 각인 시킨 드라마이다.

오징어 게임은 할리우드에서 자주 다루었던 서바이벌 데스 게임 플롯을 한국식으로 풀어냈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적 특성은 ‘신파’와 ‘도구’에 있다. ‘신파’는 게임 참가자들의 사연에 해당되고, ‘도구’는 게임을 진행시키는 수단과 방법을 지칭한다.

서바이벌 게임은 할리우드에서 익숙한 서사이다. '프레데터'(존 맥티어난, 1987), '큐브'(1997, 빈센조 나탈리),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게리 로스, 2012), '메이즈 러너'(웨스 볼, 2014) 등은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영화들이다.

이런 유형의 서사는 대체로 밑도 끝도 없는 상황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참가자의 사연보다는 박진감 넘치는 게임 스펙터클이 관전 포인트였다.

오징어 게임은 게임과 생명, 돈과 가족을 잔인하게 엮어 놓은 드라마이다. 돈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잔혹 동화이다.

참가자들의 사연이 신파적이라면 이들이 치러야하는 6개의 게임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러나 글로벌 시청자에게는 낯설고 신선한 한국의 아이들 놀이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징검다리 건너기’, ‘동전 던지기’ 라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놀이로 생사가 갈린다는 점이 그로테스크하고 아이러니하다.

서바이벌 게임 서사는 언제부터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왔을까? 1924년에 나온 미국 단편 소설 '가장 위험한 게임 The Most Dangerous Game'이 기원으로 꼽히고 있다. 1932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소설의 내용은 사냥꾼 일행이 요트가 난파되어 도착한 섬에서 인간사냥 게임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인기를 끌었고 영화도 성공했다. 배경을 현대로 바꾼 리메이크 작 '서바이벌 게임'(어니스트 R. 디커슨, 1994)과 '헌트'(크레이그 조벨, 2020)도 있다. 오징어 게임과 마찬가지로 이들 서사의 공통점은 돈과 권력을 쥐었으나 삶이 무료한 인간들이 기획한 가장 비인간적인 게임으로 인간 사냥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100명 중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아 영광과 부를 차지하는 스토리는 스티븐 킹의 소설 '롱 워크The Long Walk'를 시발점으로 꼽곤 한다. '롱 워크'는 스티븐 킹이 대학 신입생이던 1966년에 쓴 첫 장편소설인데 1979년에서야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으로 낸 공식적인 첫 장편소설은 '캐리 Carrie'로 1976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영화화하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롱 워크'는 대체 역사를 다룬 SF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군사정권이 다스리는 파시즘 국가로 그리고 있다. ‘통령’이라는 독재자는 매년 10대 소년들이 참가하는 ‘롱 워크’라는 걷기 대회를 연다. 자발적으로 참가한 100명의 소년들은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 걸어야 한다. 시속 6.5킬로 아래로 걷는 속도가 떨어지면 경고를 받게 되고 세 번 경고 이후에는 ‘티켓’이 발부된다. 여기서 티켓은 사살이다. 잠도 잘 수 없고 먹는 것도 걸으면서 해결해야 하는 극한의 경기이다.

'롱 워크'는 많은 영화에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우선, 원작 소설의 기본 전제만 차용한 영화 '런닝 맨'(폴 마이클 글레이저, 1987)을 들 수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서바이벌 게임을 TV쇼로 전국에 중계한다는 내용으로 당대 최고의 근육남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누명을 쓰고 어쩔 수 없이 게임에 참가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일본 작가 타카미 코슌은 이 소설에서 영향을 받아 '배틀 로얄'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소설을 영화화 한 '배틀 로얄'(후카사쿠 킨지, 2000)은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수학여행을 가던 일본의 어느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외딴 곳에 끌려가 3일 동안 데스 게임을 벌인다는 줄거리가 너무 잔혹하다는 여론이 있었다. 역시 최후의 1인만이 살아남아 섬을 빠져나온다.

언급한 소설과 영화들이 발표된 시기는 흥미롭게도 공통점이 있다. '가장 위험한 게임'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초유의 전쟁 이후 출간되었고, '배틀 로얄'은 일본 경기 침체기 극점에서 등장했고, '오징어 게임'은 세계적인 팬데믹 한 가운데서 출현했다.

이들 작품은 인류의 어두운 이면을 끄집어내기에 불쾌감을 줄 수도 있지만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심연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게임들이 책과 영상 밖에서 펼쳐지는 진짜 공포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두근두근 '오징어 게임' 시즌2를 기다린다. 이현경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