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CJ제일제당과 쿠팡의 '햇반대전'이 쿠팡의 판정승으로 끝나는 모양새를 보인다.

압도적인 시장점유율도 결국 소용이 없었다. 시장에서 유통사의 막강한 힘에 눌린 제조사는 '맞짱'을 뜬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기자의눈] '햇반대전'은 쿠팡 판정승, 소비자에게 과연 반가운 일인가

▲ 즉석밥 '햇반'을 둘러싼 CJ제일제당과 쿠팡의 줄다리기가 끝나가고 있다. 쿠팡의 발주 중단이란 강수에 CJ제일제당이 결국 고개를 숙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쿠팡에서 판매되고 있는 CJ제일제당의 햇반. <쿠팡 홈페이지>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즉석밥 브랜드 ‘햇반’의 쿠팡 납품 정상화를 위한 합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햇반대전은 CJ제일제당이 계약 물량에 못 미치는 물량을 납품했다가 쿠팡이 발주 중단이라는 강수로 맞서며 발발했다.

협상 결과 햇반의 납품 수량과 마진율 책정에서 양측 가운데 어디에 더 유리한 조건이 매겨질지는 알 수 없지만 둘 사이의 관계에서 쿠팡이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명확하다.

이번 햇반대전은 유통사와 제조사 사이 ‘힘의 균형’이 깨지고 유통사 쪽으로 주도권이 쏠리고 있는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그래도 국내 즉석밥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는 CJ제일제당이기에 쿠팡에 맞서 이만큼 버텼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온다.

국내 최대의 이커머스기업와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줄다리기는 한 달이란 짧은 시간에 마무리됐다. 이제 줄다리기를 관전하던 소비자들에게 관전료 청구서가 날아들 일만 남은 듯하다.

'유통 공룡'이 된 쿠팡의 독주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잠깐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유통사와 제조사 사이 힘의 균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해왔다.

과거에는 제조사가 유통사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다. 제조사들은 대리점과 특판점 등의 전국 공급망을 구축하고 슈퍼마켓부터 중소형 마트에 이르는 채널에 상품을 공급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통채널은 그만큼 제조사의 영업망 의존도가 높았다.

이후 두 세력의 균형이 맞춰지기 시작한 계기는 1993년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유통사가 막대한 물량을 주문하거나 때로는 자체 브랜드(PB) 제조를 맡기는 '큰 손' 앞에서 제조사는 예전만큼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자체 유통망을 구축한 대형마트가 전국으로 영토를 확장할 때마다 제조사는 본사의 직거래의 비중을 늘렸다. 자연스럽게 기존 대리점 공급망은 힘을 잃고 유통사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졌다.

힘이 유통사 쪽으로 확실히 기울기 시작한 것은 이커머스가 등장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소비가 급증하면서다.

쿠팡, 컬리 등 새로운 유통기업들은 첨단 물류기술에 투자해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영향력을 늘려나갔다. 이커머스의 편리함을 맛본 소비자들은 ‘무엇을’ 사는지만큼 ‘어디서’ 사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제조사와 유통사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소비자들에게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거대 유통사는 가격 경쟁을 위해 제조사에 끊임없이 납품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유통업체의 강력한 요구 앞에서 제조사가 당장 할 수 있는 선택은 제품의 품질에 손을 대는 것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품질 혁신을 위한 투자 여력을 갉아먹음으로써 시장에는 ‘싸구려’ 혹은 ‘가품’이 판을 칠 수도 있다.

기업 생태계 측면에서도 ‘상생’의 가치가 위협받게 된다.

힘 있는 유통업체의 갑횡포는 중소 규모 제조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꼽힌다. 실제로 할인판촉비 요구, 성과장려금, 재고 폐기 비용 떠넘기기 등의 갑횡포가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은 사례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쿠팡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쿠팡이 LG생활건강을 비롯한 납품업체에게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에서의 판매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쿠팡에서는 광고를 종용했다는 혐의였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내년에 온라인 플랫폼 상생모델 시범사업에 나서기로 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관련 당국이 나서 유통사, 제조사, 소비자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중재할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하고 각종 자율협약을 맺도록 유도해 유통사와 제조사 사이 힘의 균형을 맞추도록 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 피해를 막는 방법이 될 것이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