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오너가 바뀌면 대부분 경영진도 바뀐다.
능력이 출중하거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잠시 대표이사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있지만 오래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쌍용건설 주인이 다시 바뀌어도 대표이사에는 김석준 회장(사진)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
그런 점에서
김석준 쌍용건설 대표이사 회장과 쌍용건설의 관계는 기업사에서 아주 흔치 않는 일이다.
김 회장은 1983년 약관의 나이에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른 뒤 40년 동안 변함없이 회사를 이끌어 왔다. 그 와중에 쌍용그룹은 해체됐고 쌍용건설의 주인은 두 번 바뀌었다. 그의 신분도 창업주 아들에게 전문경영인으로 바뀌었다.
쌍용건설은 글로벌세아를 세 번째 주인으로 맞이하는데 이번에도 김 회장은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해외건설 명가'의 역사를 써내려 갈 것으로 보인다.
18일 쌍용건설 안팎에 따르면 쌍용건설 임원 등 실무진은 최근 글로벌세아 경영진과 함께 폴란드 등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쌍용건설이 글로벌세아그룹으로 인수되면 해외건설분야 사업 확장에 우선 주력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실제 경영진들이 해외 현지를 직접 방문해 사업기회 등을 검토한 것으로 파악된다.
글로벌세아 경영진은 미국을 시작으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중동 두바이까지 약 한 달 동안 해외시장을 둘러보고 지난 7월 귀국했다. 이 일정에 쌍용건설 실무진도 1주일가량 동행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세아 경영진과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에 출장 겸 파견 방식으로 실사를 다녀왔다”며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을 비롯해 글로벌세아와 해외 개발사업 등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은 글로벌세아를 등에 업고 회사 재건 작업에 다시 한 번 힘을 실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회장은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둘째 아들이다.
김 회장은 쌍용건설이 두 번의 워크아웃과 수차례의 매각 시도 및 불발 등을 겪으며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동안에도 오너경영인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해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켜왔다.
김 회장은 쌍용건설이 글로벌세아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은 뒤에도 그대로 회사 경영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회장이 2021년 5월 쌍용건설 대표이사에 재선임 돼 2024까지 임기가 남아있다는 점은 제처두더라도 해외영업 능력과 내부에서 쌓아온 두터운 신뢰를 고려할 때 글로벌세아가 굳이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회장은 쌍용건설이 어려움을 겪을 때 해외시장을 개척해 위기를 극복하고 쌍용건설을 해외건설 ‘명가’로 재건한 장본인이다.
쌍용건설은 현재도 중동 두바이 랜드마크 호텔 시공을 맡는 등 해외에서 더 인정받으면서 전체 매출에서 해외사업 비중이 50%를 넘어선다.
글로벌세아가 쌍용건설 인수로 해외사업분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는 만큼 김 회장의 입지는 더 탄탄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김 회장은 특히 싱가포르 화교사회의 ‘마당발’로 알려져 있다. 인맥도 탄탄하다고 한다. 한국 건설기업들의 해외 텃밭으로 불리는 중동 두바이 등의 정재계 인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 쌍용건설을 인수한 두바이투자청(IDC)도 2015년과 2018년, 2021년까지 김 회장을 대표이사에 재선임하면서 굳건한 신뢰를 보였다.
글로벌세아는 쌍용건설을 인수하면서 이례적으로 인수자금 외 대규모 유상증자로 회사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실어줄 예정인데 이런 결정에도 김 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은 쌍용건설이 설립된 1977년 쌍용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해 그룹 경영에 합류했다.
미국 로스앤젤러스와 뉴욕 등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다 1982년 쌍용건설 이사로 이름을 올린 뒤 1983년 쌍용건설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회장은 쌍용그룹이 해체되고 쌍용건설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는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40여 년 동안 쌍용건설을 이끌어왔다.
쌍용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그룹의 총 매출이 25조 원에 이르던 재벌그룹이었다. 당시 재계순위에서도 삼성, 현대, LG, 대우그룹의 뒤를 이어 SK와 5, 6위를 다퉜다.
쌍용건설도 1980년대에는 도급순위(현재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업계 7위까지 올랐던 대형 건설사였다.
하지만 쌍용그룹이 외환위기로 해체되면서 쌍용건설도 휘청이기 시작했다.
쌍용건설은 1999년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했고 2002년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매각됐다.
그 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타격으로 2013년 두 번째 워크아웃을 겪었고 2014년에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2015년에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인 두바이투자청(ICD)에 인수되면서 법정관리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쌍용건설은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주택시장 호황기에 힘입어 신규 분양물량이 증가해 왔지만 코로나19로 해외 현장들이 타격을 받으면서 영업이익이 위축됐다.
쌍용건설은 해외현장 추가비용 발생 등으로 회사의 자본규모가 2019년 말 2163억 원에서 2021년 말 1452억 원으로 축소됐다. 2021년 말 기준 부채비율도 562.4%에 이른다.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2021년 30위에서 2022년 33위로 세 계단 내려앉았다.
글로벌세아는 의류 제조·판매시장 세계 1위 기업인 세아상역을 주력 계열사로 둔 그룹으로 중남미와 동남아지역을 중심으로 해외에 생산공장 40여 곳을 두고 있다.
해외 수출, 유통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만큼 현지 네트워크도 탄탄하다.
글로벌세아는 앞서 2018년 세아상역을 통해 STX중공업의 플랜트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건설부문 자회사도 보유하고 있다.
이에 쌍용건설이 글로벌세아 계열로 합류하면서 해외사업에서 양적, 질적 성장에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건축, 토목이 주력인 사업영역을 플랜트, 개발사업으로 확장하고 글로벌세아의 사업 기반을 발판으로 중남미 등으로 해외시장을 넓히는 데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김 회장은 형인 김석원 전 쌍용양회 회장, 동생인 김석동 전 굿모닝증권 회장 등 형제들이 모두 회사를 매각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동안에도 재계에 남았다.
쌍용건설의 주인이 또 한 번 바뀌는 이번에도 해외사업 확대로 회사의 재도약을 진두지휘하게 될지 행보가 주목된다.
투자은행(IB)업계 등에 따르면 글로벌세아그룹은 최근 쌍용건설 실사작업을 마쳤다. 인수자금 마련 등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8월 안에 두바이투자청이 보유한 쌍용건설 지분 99.95%에 관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인수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