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방문규 전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윤석열정부의 초대 국무조정실장으로 옮겨간 이후 한 달 가까이 수출입은행장 자리가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 

다음 행장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교수 출신 인사가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은 과거 국제금융분야를 잘 모르는 비전문가 행장이 취임해서 겪었던 곤란한 상황이 반복될까 우려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장에 인수위 출신 교수 오나, 제2의 산업은행 사태 가능성도

▲ 한국수출입은행 사옥.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수출입은행장에 인수위 출신 교수가 임명될 경우 노조의 반발로 제2의 산업은행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27일 수출입은행 노조에 따르면 노조는 정책금융과 국제금융에 관한 전문성과 경험이 없는 인수위 출신의 교수가 다음 행장으로 올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

박요한 수출입은행 노조위원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인수위에 있었던 교수 출신 인사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엄중한 경제상황에서 수출입은행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역대 수출입은행장을 살펴보면 기획재정부 출신의 경제 관료가 많았지만 기재부 출신이 아닌 인사가 수출입은행장으로 온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수출입은행을 맡았던 이덕훈 전 행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거쳐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과 한빛은행장,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우리은행장 등을 지내고 수출입은행장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KDB산업은행 회장에 국회의원과 경제수석을 지내고 인수위에서 정책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한 강석훈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를 임명했다.

이에 산업은행 노조는 산업은행의 부산이전이라는 대통령 공약을 반대하며 강석훈 신임 산업은행 회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나서 강 회장이 임명 15일 만에 취임식을 열기도 했다.

수출입은행 노조는 정부가 교수 출신을 행장에 임명한다면 풍부한 현장 경험이 필요한 수출입은행을 이끌기 부족할 수 있다고 바라본다.

박 위원장은 “실제로 금융을 실행하고 사업을 관리하는 데 있어 현장 감각이 중요하다”며 “수출입은행과 같이 해외 정책금융을 맡고 있는 경우에는 해외에서 돌아가는 일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 출신이 오게 되면 수출입은행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들한테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서에서 이덕훈 전 행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라는 배경으로 수출입은행에 온 뒤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이 전 행장이 정책적 비전보다는 정치적 프레임 위주의 금융지원을 고집해 대형 손실을 일으키고 감사원으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인수위 출신의 교수를 다음 수출입은행장에 실제로 임명한다면 최근 산업은행이 겪고 있는 행장과 노조의 대치상황이 수출입은행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과거 이덕훈 전 행장이 임명됐을 때에도 당시 수출입은행 노조는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 '낙하산'으로 임명됐다며 출근 저지 시위를 벌였다. 이에 이 전 행장은 노조와 갈등을 마무리 짓고 임명된 지 6일만에 취임식을 열 수 있었다. 

수출입은행 노조는 대외내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수출입은행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인물이 다음 행장으로 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 위원장은 “방문규 전 행장이 있을 때 수출입은행은 여신의 방향성도 바뀌고 반도체, 배터리 등 투자 포트폴리오가 변화하는 등 많이 업그레이드됐다”며 “이 연장선상에서 구성원들이 국가경제를 위해 일하려고 할 때 방향성을 제시하고 엄중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 나가서 직원들을 끌고 갈 수 있는 리더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29일 수출입은행에서 차기 행장 선임과 관련해 직원들이 원하는 행장상을 외부에 알리는 결의대회를 연다는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

다만 금융업계는 역대 수출입은행장들과 마찬가지로 기획재정부 출신의 관료가 다음 행장으로 올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다.

수출입은행이 기획재정부의 산하기관으로 있어 기재부의 영향력이 행장 선임에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장은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에 김철주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최희남 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황건일 세계은행 상임이사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