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지나친 이익추구를 자제하고 대출의 부실화를 대비해 충분한 규모의 충당금도 쌓아라.'

금리상승에 경제침체 위기론까지 겹치면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최근 은행권에 내린 주문의 핵심 내용이다.
 
이자장사 비판에 대출금리 내리는 은행들, 부실대비 충당금까지 '고심'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 간담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당국의 요구에 발을 맞출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케이뱅크와 NH농협은행은 전세자금대출의 금리를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21일부터 일반전세대출 금리를 연 0.41%포인트, 청년전세대출금리는 연 0.32%포인트 각각 낮췄다. 

NH농협은행은 24일부터 전세자금대출에 부여된 우대금리를 0.1%포인트 더 적용하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우대금리 한도는 대면 기준 최고 1.0%에서 1.1%로 확대된다. 

이밖에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은행 역시 내부적으로 대출금리 인하를 위한 구체적 방안의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KB국민은행은 4월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의 금리를 각각 최대 0.45%포인트, 0.55%포인트 인하한 바 있다. 우리은행역시 전세대출금리를 0.2%포인트 인하했다.

한국은행이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는 금리상승기임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주요 수익원인 대출금리를 인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기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금리상승 시기에 금융소비자의 이자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며 메시지를 내놓았고 같은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은행권에 촉구했다.

이 원장은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면서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취약 차주의 금리조정폭과 속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금융당국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은행들의 '이자장사'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동안 시중은행들이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로 과도한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며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통분담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통제로 은행의 자율성을 해치고 물가와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는 시기에 자칫 대출 부실화만 가중돼 은행의 건전성만 악화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3일 이같은 지적과 관련해 "금감원이 당국으로서 가진 역할이나 권한에 기초해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금리를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면서도 "은행은 상법에 따른 주주 이익뿐만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것과 같이 공공적 기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예대금리차를 통한 이익추구 제한에 더해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대손충당금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금리인상 충격으로 금융사의 신용손실 확대가 예상되는 만큼 충분한 규모의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해 손실흡수능력을 제고하도록 하겠다"며 "개별 금융사의 유동성 위기와 부실이 다른 업권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시스템리스크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분기부터 금융지주들이 충당금 추가 적립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익폭이 제한될 것이라는 것이 은행권 안팎의 시각이다.

은행권에서는 금리상승이 가파른데 대출금리 인상 억제를 지시해 이익확대는 막아놓고 시장에서 대출의 부실화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은행자체 여력으로 충당금까지 대폭 쌓는 부담을 주는 것은 '이중고'라며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다만 국내외 경제상황이 불확실하고 서민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자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만큼 은행들이 공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정치권과 당국의 비판에도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국내 은행이 벌어들인 이자이익은 12조6천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1조8천억 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율은 16.9%에 이른다.

1분기 은행의 전체 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90.6%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4대 금융지주를 비롯해 많은 시중은행들이 1분기에 사상 최대실적을 경신하기도 했다. 공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