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민연금공단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이 올해 2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개정안에는 국민연금에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에는 기금운용본부가 주주대표소송 여부 등을 결정하고 수탁위는 예외적 사안만 맡았다.
수탁위는 국민연금이 2018년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취지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설립된 기구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여부 및 방향을 결정한다.
재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탁위를 통한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이 과도하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한다.
기금운용에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기구인 수탁위에 권한이 집중되는 데다 주주대표소송의 대상이 ‘이사 등이 기업에 부담하는 모든 책임’으로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수탁위는 기업의 배당정책, 임원의 보수한도 등 ‘비경영참여 주주제안’만 할 수 있었다.
주주대표소송의 확대는 경영자 입장에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재계는 이번 개정안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코스닥협회 등 7개 경제단체는 이번 개정안의 내용이 알려지자 지난 10일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에 몰두하는 국민연금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성명을 냈다.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강화에는 김 이사장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이사장은 2020년 취임한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의 안착에 공을 들였고 지난해에는 직접 관련 서적을 집필할 정도로 ESG 경영 확대에 앞장서며 국민연금의 주주활동 강화에 애를 써 왔다.
이번 수탁위의 주주대표소송 권한 강화는 주주제안, 의결권 행사 등 다른 주주활동과 달리 소송이라는 법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다만 김 이사장이 주주대표소송 확대를 통해 실제 효과를 보려면 수탁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수탁위는 근로자단체 추천 3명, 사용자단체 추천 3명 지역가입자단체 추천 3명 등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데다 9명 가운데 6명이 비상근이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당장 재계에서 수탁위가 주주대표소송의 주체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주요 이유도 수탁위의 전문성 문제다.
7개 경제단체는 성명에서 “수탁위는 기금 운용에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와 여론에 따라 소송을 제기할 유인이 높다”며 “실제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가 소송을 결정하고 예외적인 사안은 기금운용위원회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탁위가 이번 개정안으로 힘이 실리는 만큼 명실상부하게 독립성을 지켜내느냐도 관건이다.
특히 지난해 3월에는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을 놓고 수탁위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기금운용본부가 찬성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일부 위원이 기금본부 결정에 항의해 사퇴하는 등 수탁위의 위상과 권한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 주주총회 안건을 둘러싼 기금운용본부와 수탁위의 갈등과 관련해 지적을 받고 “이번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절차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부분을 놓고 개선안 마련했다”며 “그 다음으로 기금운용본부, 수탁위,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할 필요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