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곤 에이치엘비 대표이사 회장이 국내 조선산업 경기회복을 계기로 에이치엘비 본업인 선박사업에서 실적 개선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진 회장은 공격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며 바이오사업 확대를 모색하고 있지만 바이오 쪽에서 재무적 성과를 창출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이오사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에이치엘비 실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박사업의 성장동력을 다시 공고히 해야 한다.
1일 에이치엘비 사업보고서를 분석하면 구명정 수주잔고가 지난해 66억6천만 원에서 올해 상반기 125억2천만 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와 함께 에이치엘비 별도기준 영업손실은 지난해 상반기 399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217억 원으로 줄었다.
에이치엘비가 구명정 수주를 확대한 데는 국내 조선경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치엘비는 최근 주로 바이오기업으로서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적만 놓고 보면 선박과 파이프 등 복합소재사업이 주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562억 원 가운데 75.3%를 복합소재사업에서 거뒀다.
에이치엘비 복합소재사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대형선박에 탑재되는 구명정으로 파악된다.
상반기 기준 에이치엘비 복합소재사업 수주잔고 238억 원은 구명정 52.6%, 관공선과 도선선 등 특수선 24.0%, 데빗 21.8%, 파이프 1.5% 등으로 나뉜다. 데빗은 물체를 올리고 내리기 위해 선박에 설치되는 기둥을 말한다.
에이치엘비 구명정의 주요 수요처는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3사로 파악된다. 조선3사는 상반기 연결기준 에이치엘비 매출의 55.1%를 차지하고 있다. 별도기준 매출로 계산하면 조선3사의 비중은 73.4%까지 높아진다.
에이치엘비는 앞서 조선업계 불황의 영향으로 선박사업에서 고전해 온 것으로 파악된다. 바이오기업들이 포함되지 않는 에이치엘비 별도기준 실적을 보면 2018년 영업이익 416억 원을 거뒀으나 2019년 영업손실 305억 원을 보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최근 조선3사의 수주 규모가 커지면서 에이치엘비 선박사업 실적도 덩달아 개선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조선3사는 올해 10월까지 누적 수주규모 387억8천만 달러를 달성했다. 연간 목표 합계인 316억6300만 달러를 초과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구명정 수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선박 수도 늘었다. 시장 조사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의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수주량은 304척으로 지난해 전체 수주량 187척을 한참 웃돌았다.
진 회장에게 에이치엘비 선박사업의 회복은 단순한 실적 개선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진 회장은 2017년 에이치엘비 대표에 오른 뒤 인수합병 중심의 바이오사업 육성전략을 추진해왔다.
2018년 의료기기기업 화진메디칼과 화진메디스를 사들인 데 이어 2019년 항암제 개발기업 LSK바이오파트너스(현재 엘레바테라퓨틱스)를 인수합병했다. 또 2020년에는 백신 개발기업 이뮤노믹테라퓨틱스를 종속기업으로 편입시켰다.
이렇게 인수한 기업들은 현재 모두 수익성이 저조하다. 기업별 적자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엘레바테라퓨틱스 371억 원, 이뮤노믹테라퓨틱스 93억 원, 화진메디칼 3억 원, 화진메디스 5천만 원 등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화진메디칼만 적자를 벗어났다.
엘레바테라퓨틱스와 이뮤노믹테라퓨틱스처럼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향후 흑자전환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엘레바테라퓨틱스는 미국에서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의 신약허가신청(NDA)을 준비하고 있다. 이뮤노믹테라퓨틱스는 교모세포종 백신 ITI-1000의 임상을 진행하는 중이다.
다만 진 회장은 바이오기업들의 수익기반이 다져지기까지 기다리는 대신 새로운 인수합병 대상을 찾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10월 진단기업 에프에이 합병을 결정했고 11월에는 에이치엘비그룹 컨소시엄을 통해 백신 유통기업 지트리비앤티를 인수할 것으로 예정됐다.
에프에이는 코로나19 진단에 사용되는 의료기기를 기반으로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트리비앤티는 다른 에이치엘비 산하 바이오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적자를 보는 중이다.
▲ 에이치엘비의 일반형 구명정. <에이치엘비>
진 회장이 앞으로도 계속 인수합병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에이치엘비 본업인 선박 등 복합소재사업이 제자리를 찾을 필요가 있는 셈이다.
진 회장은 단순히 선박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소연료선박을 중심으로 선박사업의 영역을 넓히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
에이치엘비는 10월28일 울산에서 수소연료선박 시운전을 마쳤다. 앞으로 수소연료선박 양산체계를 구축하고 국내 및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세계적 친환경 정책기조에 대응해 기존 디젤연료 기반 선박을 대체할 수 있는 품목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에이치엘비 관계자는 “국내에는 소형선박 약 6만 척이 있으나 환경오염 및 소음 문제가 이어져 수소연료선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울산은 에이치엘비 선박 생산시설이 자리잡은 지역이다. 정부로부터 ‘수소그린모빌리티 특구’로 지정돼 수소 기반 이동수단의 상용화가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기도 하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