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서 열린 '자율주행 페스티벌'에 참가한 시민들이 자율주행차에 오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22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서 열린 ‘자율주행 페스티벌’ 현장을 찾았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신 자율주행 기술을 시연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계획했다. KT, SK텔레콤, 삼성전자, LG전자, 연세대학교, 국민대학교 등 17개 기관이 함께 참여했다.
자율주행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인 오전 9시 미리 도착했다. MBC문화방송 건물 앞 광장에 설치된 무대에서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무대 좌우로는 자율주행 차량, 자율주행 관련 제품들을 소개하는 공간이 준비됐다.
자율주행차는 생각보다 종류가 많았다. 일반 승용차종도 있었지만 생소한 차량도 적지 않았다. 운전석이 없어 낯선 박스형 셔틀버스, 사륜 오토바이를 닮은 짐차 등이 눈에 띄었다.
어떤 것이든 사람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장면을 선뜻 상상하기 어려웠다.
잠시 느긋하게 행사장을 구경하다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이번에 소개되는 자율주행차들은 테슬라와 우버 등 세계 유수의 자율주행 관련 기업들이 개발한 것과 어떤 점이 다를까?
아직 행사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 자율주행 페스티벌에 참가한 기업 관계자를 찾아가 설명을 부탁했다.
◆ 차량끼리 정보 주고받아 사고 피한다
비밀은 5G에 있었다.
정준학 KT 자율주행사업팀장은 “기존 자율주행차들은 단순히 센서 기반으로 움직였다”며 “하지만 5G 기반 자율협력주행시스템(C-ITS)이 적용된 차들은 실시간으로 차량끼리 소통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자율주행차 1대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교통사고 등 도로상황이 5G통신망을 통해 모든 차량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차량과 차량뿐 아니라 차량과 도로 인프라 사이 통신도 가능해 사고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자율협력주행시스템 전용 5G인프라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는 운행할 수 없다는 점이 난제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자율협력주행시스템을 확대하기에 앞서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에 5G 인프라 등으로 구성된 실험장(테스트베드)을 구축하고 여러 관계기관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정준학 팀장은 “KT는 국토부, 과기정통부 등 정부 부처나 다른 기업들과 함께 2020년부터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자율협력주행 기술 실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10시 정각이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자율주행 페스티벌을 기획한 관계자들이 버스형 자율주행차를 타고 행사장에 나타났다.
박원순 시장은 무대에 올라 “자율주행은 궁극적으로 보행자 중심의 도시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기술 기반이 될 것”이라며 “남녀노소 차별 없는 이동을 가능하게 해 시민의 삶에 혁신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미 장관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머지않아 자율주행차가 일상화돼 삶과 문화를 변화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우리 정부 역시 하루빨리 자율주행 시대를 열고 미래 먹거리로 발전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고 말했다.
박 시장과 김 장관은 상암 자율주행 실험장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산업을 부흥하겠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자율주행 분야의 ‘동업자’라서 그런지 박 시장과 김 장관은 행사 내내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박 시장은 다음으로 축사를 한 김 장관을 위해 직접 마이크 높이를 고쳐주기도 했다.
◆ 5G 자율주행차를 직접 타보다
하지만 축사가 끝나자 시민들의 관심은 박 시장과 김 장관을 떠나 자율주행 페스티벌의 꽃인 자율주행차 탑승 체험으로 쏠렸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2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서 열린 '자율주행 페스티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운영진이 자율주행차 탑승 신청절차를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서울시는 6월 초부터 인터넷을 통해 자율주행차 탑승 예약을 진행했지만 이날 현장을 방문한 시민들도 신청이 가능했다.
다만 사람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신청은 금방 마감됐다. 기온 30도를 웃돌 만큼 날씨가 덥고 햇볕이 따가웠지만 최신 자율주행차를 직접 타보길 바라는 시민들의 열정이 더욱 뜨거워 보였다.
자율주행차 탑승은 행사장에서 50m가량 떨어진 월드컵북로에서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상암월드컵파크 아파트 4단지와 5단지 사이 왕복 1km에 이르는 구간의 일반차량 출입을 일부 통제한 가운데 자율주행차들이 오가는 방식이었다.
여러 기관에서 개발한 자율주행차들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석이 없는 셔틀버스가 가장 많이 운행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어린이들이 신기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곧 순번이 돌아왔다. 타게 된 차종은 기아차의 스포티지였다. 국민대가 개발한 자율협력주행시스템이 탑재됐는데 겉보기로는 일반차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 운전석에 타려고 했지만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국민대 관계자가 운전석을 지켜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뒷좌석에 올랐다.
곧 차량이 출발했다. 국민대 관계자는 운전석 옆에 설치된 커다란 모니터를 조작하더니 망설임 없이 운전대에서 손을 놨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서늘해졌다. 다행히 차는 알아서 차선을 유지했다.
잠시 후 미리 준비된 사람 모양 장애물이 도로로 튀어나왔다. 차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더니 장애물과 충돌하지 않고 멈췄다. 장애물이 사라지자 다시 출발했다.
이후에는 자동차 모양 장애물을 피해 스스로 차선을 바꾸기도 했다. 도로표지용 고깔로 막힌 곳에 이르러서는 운전대가 저절로 돌아가면서 커브를 돌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 내심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속도가 시속 20~30km에 불과해 자율협력주행시스템이 기술적으로 얼마나 높은 수준에 이르렀는지 체감하기 어려웠다.
국민대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모든 차량의 속도를 제한한 상태”라며 “제한이 없으면 일반차량과 완전히 똑같은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왕복 1km에 이르는 구간은 5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차에서 내릴 때도 방금까지 스스로 움직이는 차를 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관악구에 사는 김소희씨는 “그동안 운전을 잘하지 못해 서울시내에서 운전하기 무서웠다”며 “자율주행차가 빠르게 상용화돼서 아이를 데리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산구에서 온 민승욱군은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 회장이 스마트폰을 처음 만들었을 당시 몇 년 안에 지금처럼 진보할 줄 몰랐다”며 “자율주행차도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발달해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바라봤다.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민승욱군의 아버지 민상균씨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보험, 일자리 등 자율주행차의 어두운 부분을 해결하고 사회와 기술의 균형을 이룬 뒤에야 생활이 편리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의 시대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서울시는 앞으로 상암 자율주행 실험장을 모든 자율주행 관련 기관들에 무료로 개방하면서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국토부는 2022년까지 전국 고속도로 5천km 구간에 5G 인프라를 구축해 자율협력주행 시스템을 운영할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