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2019-03-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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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한국투자증권의 제재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사안 자체의 법률 논쟁에 더해 기관의 자존심 문제까지 걸린 상황으로 보인다.
▲ 금융감독원.
10일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금융감독원의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관련 제재 논의는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원은 3월 중에 14일과 28일 두 차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지만 한국투자증권 제재 안건이 상정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발행어음 관련 첫 제재 논의인 데다가 법률적 쟁점도 많다”며 “치밀한 법리 검토가 필요한 만큼 결론을 내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2월에도 한국투자증권의 징계 수위를 결정할 제재심의위원회를 열 방침을 세웠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2월15일 “한국투자증권 징계를 위한 제재심의위원회는 2월 안으로 열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원장의 발언은 열흘도 안 돼서 뒤집어졌다.
금감원은 2월24일 같은 달 28일로 예정된 제재심의위원회에 한국투자증권 징계 안건을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투자증권의 징계 안건은 지난해 12월20일 처음 논의된 뒤 3개월이 다 되도록 구체적 논의 일정도 못 잡고 있는 셈이다.
금감원의 발목을 잡는 가장 주된 원인은 법률적 논쟁이다.
한국투자증권의 혐의는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사실상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개인 대출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에 따르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은 개인 신용공여에 사용될 수 없다.
문제는 한국투자증권이 최 회장과 직접 자금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특수목적법인(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에 자금을 대출해 주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키스아이비제16차는 이 자금을 이용해 SK실트론 주식 취득을 매개로 최 회장과 총수익스왑(TRS) 계약을 맺었다.
결국 한국투자증권이 키스아이비제16차에 실행한 대출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가 쟁점이다.
거래의 형식을 보고 키스아이비제16차라는 법인을 위한 대출로 본다면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고 경제적 실질을 보고 최 회장 개인을 위한 대출로 본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금감원이 한국투자증권에 제재를 내리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더라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와 본 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최근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를 고려하면 이번 사안이 금융위를 거치는 과정에서 두 기관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금융위과 금감원은 이미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총수입스왑 계약이 워낙 광범위하게 이용돼 온 데다 법적 성격이 분명히 정리되지도 않은 만큼 어느 기관이 어떤 결론을 내려도 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금융위를 거쳐도 한국투자증권의 행정소송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기나긴 논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