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중동사업 성과로 '3세경영' 순항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2016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합작조선소 건설예정 부지에서 열린 킹 살만 조선산업단지 선포행사에서 아민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으로부터 커피와 다기세트를 선물로 받고 있다. 

“사업기회를 포착하는 예리함은 정주영 일가의 DNA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두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아민 알 나세르 사장이 했던 얘기다.

정 부사장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중동사업에서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3세 경영’의 출발이 좋아 보인다. 

29일 현대중공업그룹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지주가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아람코에 성공적으로 매각하기로 한 만큼 향후 아람코와 여러 사업에서 협력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안으로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 아람코와 ‘엔진 합작법인’을 세운다. 법인은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에 있는 '킹 살만(King Salman)' 조선산업단지에 설립되며 한 해에 200여 대의 엔진을 생산하게 된다.

이는 현대중공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힘센엔진’의 라이선스(사용권)를 활용하는 첫 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대중공업은 합작사업을 통해 로열티(사용권 수입)와 기자재 판매, 기술 지원 등으로 여러 부가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지에 설립한 법인 ‘IMIC(International Maritime Industries company)’을 통해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아람코와 합작 조선소 건립도 추진 중이다. 

IMIC 지분은 현대중공업이 10%를 보유하고 아람코가 50.1%, 사우디라라비아 국영 해운사인 바흐리와 시추설비회사 람프렐이 각각 20%, 19.9%씩 들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분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사업 확장에 필요한 기회를 더욱 많이 잡을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 투자 포인트를 뒀다. 합작사업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주되는 선박의 수주 우선권을 확보하고 조선소 운영 등에 참여할 수도 있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정 부사장에게는 의미가 꽤 큰 결실이 된다. 중동사업은 그가 추진한 첫 해외사업이기 때문이다.

정 부사장은 2015년 11월 현대중공업과 아람코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에 직접 서명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당시 “아람코 프로젝트는 정기선 (당시)총괄부문장이 더 잘 안다”며 합작사업 체결의 공이 온전히 정 부사장에게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 부사장은 합작 조선소를 세우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모든 과정을 직접 챙겼다.

2016년 7월에는 조선소 건설 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장관과 아람코 경영진을 만나기도 했다. 당시 정 부사장은 은으로 만든 거북선을 선물로 준비해 두 시간 전쯤 도착해 면담을 준비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은으로 만든 거북선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특별한 손님을 만날 때 주던 선물이다.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은 정 부사장의 이런 모습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에 아람코가 현대중공업지주와 지분 매매계약을 맺은 것도 그동안의 우호적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2015년 전략적 협력을 약속한 이후 아람코와 여러 사업을 함께 진행하며 신뢰를 쌓아온 점이 지분 매매계약을 성사하는 데 적잖이 작용했다"며 "앞으로도 아람코와 여러 측면에서 협력할 예정인 만큼 중동에서 발주되는 선박이나 해양플랜트 공사를 따내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 부사장은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난해부터 사업 보폭을 빠르게 넓히며 경영권 승계작업을 본격화한 만큼 회사 안팎에서 지켜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사업 호조는 승계의 명분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람코와 협력관계는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 일감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아람코가 발주하는 '마르잔(Marjan) GOSP-4' 해양플랜트 수주전에서 유력한 참가자로 꼽힌다. 프로젝트 입찰은 2월 중순에 이뤄지며 계약 규모는 30억 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이탈리아 사이펨(Saipem)과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인도 L&T-아랍에미레이트 NPCC 컨소시엄', '미국 맥더못(McDermott)-중국 COOEC 컨소시엄' 등 2개의 다른 컨소시엄과 경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