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건설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제 폐지 결정에 긴장하고 있다.
검찰이 건설사의 담합 행위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공정수주가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이중·과잉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22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공정위가 가격담합, 입찰담합 등과 관련한 전속고발제도를 폐지한 데는 사라지지 않는 건설업계의 담합이 큰 영향을 미쳤다.
건설업계는 국내에서 가격담합과 입찰담합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으로 꼽힌다.
건설업계는 최근 10년 동안 4대강, 호남고속철도, 대구도시철도, 부산지하철, 새만금방조제, 천연가스 주배관, LNG저장탱크 등 대규모 건설사업에서 관행처럼 담합을 벌였다.
건설사 대표들은 이와 관련해 2015년 8월 ‘공정 경쟁과 자정 실천 결의대회’를 열고 대국민 사과를 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후 자정 노력을 통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담합은 건설업계의 병폐로 지목되고 있다.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국토교통부 소속기관 발주 건설공사에서 모두 24건의 담합행위가 적발됐고 이에 따라 54개 건설사에 모두 6637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위가 그동안 건설사의 담합과 관련해 전속고발권을 지니고 있었던 만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공정위는 2012년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SK건설, 포스코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 8개 대형 건설사가 가담한 4대강사업 담합을 적발했지만 검찰에 고발하지 않으면서 비판을 받았다.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도가 폐지되면 검찰도 앞으로 건설업계 담합을 공정위의 고발 없이 바로 수사할 수 있게 된다.
건설업계는 공정위와 법무부의 이번 결정으로 공정경쟁을 통한 공정수주가 더욱 확고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담합이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닌 만큼 긴장의 끈도 동시에 조이고 있다.
건설업계는 검찰과 공정위의 이중·과잉 수사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제 폐지에 직접 서명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만큼 21일 대국민 발표문에 공정위와 검찰이 긴밀히 협력해 경제주체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을 최소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정위와 검찰이 담합사건을 놓고 주도권 싸움을 벌일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 대형 건설사 대표들이 2015년 8월19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공정경쟁과 자정실천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공정경쟁과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하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
검찰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거래분야에 지속적으로 힘을 싣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1월 조직 개편에서 공정거래조세조사부를 공정거래조사부와 조세범죄조사부로 나눠 공정거래와 조세 분야를 강화했다. 7월 조직 개편에서도 공정거래조사부를 기업 사정에 특화한 3차장 아래 부서로 옮겼다.
공정위의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고발이 남용될 수 있다는 점도 건설업계의 부담이다.
기업은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한 뒤 압수수색이라도 이뤄지면 실제 법 위반 행위 여부를 떠나 대내외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는 건설사가 진행 중인 수주전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이번 공정위의 전속고발제 폐지 결정으로 건설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이중 수사에 따른 사회적 비용, 고발 남용 등이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도 “공정위의 전속고발제 폐지로 건설업계가 더욱 투명해지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고 바른 방향이 맞지만 한편으로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담합과 관련한 공소시효가 짧다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담합 등 부당 공동행위와 관련한 공소시효는 5년이다. 공소시효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횡령 혐의처럼 15년으로 길었다면 건설사들은 4대강사업 등으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이 어떤 사건을 수사할지 알 수 없지만 공소시효 때문에 과거 사건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