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즉시연금에 관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금감원 결정 거부를 놓고 즉각적 압박보다는 다양한 방법의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생명보험사들이 금감원의 결정과 권고를 사실상 무시하면서 체면을 구겼지만 곧바로 종합검사와 제재 등을 검토하기엔 ‘보복성 조치’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원장은 즉시연금 미지급과 관련해 곧바로 공식 발언을 내놓기보다는 16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와 24일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등에서 정리된 발언을 내놓을 것으로 점쳐진다.
윤 원장은 7월26일~8월1일 여름휴가를 보낸 뒤 4일부터 7일까지 해외 출장을 다녀온 만큼 현안보고를 받고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이 부족했다.
윤 원장은 간담회에서 금융 소비자 보호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앞으로 이뤄지는 보험사 검사에서 약관 위반 등 불완전판매 정황이 드러나면 중징계를 내리겠다는 경고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에 이어 한화생명도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분쟁조정 결과를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생명은 분쟁조정에 올라온 1건의 조정결과는 받아들이면서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지급' 권고를 거부했지만 한화생명은 분쟁조정 결과조차 거부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법률적 검토에 따른 결정일뿐 금감원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금감원 내부에서는 생명보험사가 금감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윤 원장이 금융감독 혁신과제에서 금융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원칙으로 내세웠는데 생명보험사들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최흥식 전 원장과 김기식 전 원장의 사퇴 등으로 흔들리던 금감원의 '영(令)'이 좀처럼 바로서지 않는다는 푸념 섞인 말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윤 원장이 "즉시연금 미지급 사태와 관련해 보복성 검사는 없다"고 이미 선을 그은 만큼 당장 직접적 압박 카드를 꺼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금감원의 일괄지급 권고를 거부했다고 해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을 대상으로 제재를 검토할 법적·행정적 근거도 없는데다 무슨 조치를 하더라도 ‘보복성’으로 비춰질 여지가 크다.
금감원은 이번 사안이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면 1심 판결이 나오거나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야하는 만큼 즉시연금 가입자들이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게 분쟁조정 신청을 유도하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자살보험금 사태’ 때도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계약이 문제가 됐던 만큼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보험계약자가 사고가 난 뒤 3년 안에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으면 청구권이 사라지지만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소멸시효의 시간이 흐르지 않고 중단된다. 중단사유가 끝나면 소멸시효 기간이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금감원 홈페이지에 즉시연금 분쟁조정 접수 공간을 별도로 만들고 금감원 건물 1층 금융민원센터에 '전담창구'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 원장은 때를 기다리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보복검사라는 시각을 피할 수 있는 명분과 시간을 확보하고 나면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종합검사 등을 통해 강한 압박을 넣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