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 여부가 국민연금공단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선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뒤 경영 참여까지 주주권 행사 범위를 점차 넓혀가는 원안을 그대로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만큼 주주권 행사 범위를 넓히는 데도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30일 도입 가능성 높아

29일 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30일 열릴 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
 
박능후,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참여 확대 요구 어떻게 수용하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기금운용위원회는 26일 2018년도 제5차 회의에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안건을 심의했지만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 여부를 놓고 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30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장인 박능후 장관을 비롯해 정부인사 당연직 6명과 사용자, 노동자, 지역가입자, 전문가 대표 14명 등 모두 20명으로 구성된다.

26일 회의에서는 노동계 위원들이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의결에 이르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은 이사 선임과 해임, 주주제안 등 직접적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을 배제하고 배당 관련 주주 활동, 주주 대표소송, 손해배상 소송, 중점 관리기업 명단 공개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수탁자 책임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서는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지만 경영계 등에서 기업 경영 간섭과 관련한 우려가 있고 기금 운용상 제약이 발생할 문제가 있다”며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는 관련 여건이 갖춰진 뒤 도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동계 위원들은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으면 아무리 배당 관련 주주활동, 중점 관리기업 명단 공개 등을 열심히 해도 기업의 변화를 강제할 수단이 없어 주주 가치 훼손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박 장관이 30일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노동계 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안을 의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애초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도입안을 마련했을뿐더러 지금 상황에서 원안을 바꾸면 경영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조금씩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는 상황에서 박 장관이 홀로 기업의 심적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도 부담일 수 있다.

30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또다시 결론을 내지 못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8월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박 장관은 그동안 7월 안에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의결하겠다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30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여는 것도 7월 안에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기금운용위원회는 보통 한 달에 많아야 한 번 정도 열렸지만 7월에는 30일을 포함하면 3차례나 열리게 된다.

투자업계에서는 30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또다시 이견 조율이 안 되면 투표를 통해 보건복지부 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능후,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여건 마련 속도 낸다

박 장관은 대신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여건을 갖추는 데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여부는 26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미뤄지면서 더욱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능후,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참여 확대 요구 어떻게 수용하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에서 열린 '2018년도 제5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지만 그동안 전문성과 책임성 등의 측면에서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노동계 위원들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관련해서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냈다.

기금운용위원회에 올라온 안건의 의결이 반대 의견에 막혀 미뤄진 것은 상당히 이례적 일로 그만큼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여부가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노동계 위원들이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한 것은 경제시민단체의 요구와 흐름을 같이 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경제개혁연대 등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을 발표한 17일 이후 연달아 논평을 내고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를 보장하지 않으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반쪽짜리에 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장관 역시 이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 장관은 26일 기금운용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이번 안에 경영 참여가 제외된 것과 관련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 가슴 아프다”며 “현행법령에 따른 기금 운용상 제약요인과 경영 참여 주주활동의 범위 등을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과 저촉되는 부분을 해소해야 한다.

자본시장법은 지분 5% 이상 들고 있는 자가 기업에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 참여를 하면 지분이 1% 이상 변경될 때마다 5일 안에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지분을 10% 이상 들고 있으면 한 주라도 변동이 생기면 5일 안에 공시해야 하고 주식을 산 뒤 6개월 안에 팔아 얻은 단기 매매차익은 기업에 반환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대기업 계열사의 지분을 대부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자본시장법 개정 없이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면 투자전략이 시장에 노출될 위험이 있을 뿐더러 매매차익 반환 등과 관련해 기금 운용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