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지분은 이건희 회장보다 많다. 현대차의 경우 정몽구 회장보다 지분이 더 많다. 큰 손이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힘을 못쓰는 것일까? 미국 연기금과 비교해 보면 콘손으로 국민연금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그만큼 최광 이사장이 해야 할 일도 많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준 2천만 명 이상의 가입자와 340만 명의 수급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거대한 적립금 기반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금액만 84조 원에 이른다. 이는 국민연금 전체 기금 적립금 422조 원의 20%에 달한다.
웬만한 규모의 상장기업이라면 국민연금의 손길이 모두 닿아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218개 상장사 지분을 5% 이상씩 보유하고 있다.
특히 주요 대기업 주식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주식투자금 중 절반 이상인 44조 원 가량을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4대 그룹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대한 국민연금 지분율은 각각 7.43%, 6.99%로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보다 높다.
하지만 이런 수치가 무색할 만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왜 그런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관행 때문에 국민연금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의결권행사 지침’을 개정했다.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이사회 참석률 기준을 현행 60%에서 75%로 높였다. 또 10년 이상 되는 장기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계열사 근무경력까지 따지도록 해 낙하산 인사를 막도록 했다. 국민연금이 대주주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 역할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아직 국민연금을 ‘소귀에 경읽기’ 식으로 대한다. 14일 ‘슈퍼 주총데이’가 끝난 지금 국민연금의 대기업 견제는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연금은 지난 7일 만도 주총에서 대표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의견을 냈지만 찬성 주주들이 많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현대해상 사외이사 신규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음에도 대주주들의 찬성표에 밀렸다.
국민연금이 주총서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핵심이유는 정부가 운영주체라는 점이다. 정부 산하의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에 간섭한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소극적으로 처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맞춰 주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안정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국민연금이 정부와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또 우리나라는 ‘오너 기업’이 대부분이고 오너들의 입김이 너무 거세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너 기업들은 그 색깔들이 제각각인데 그 색깔에 맞춰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연기금과 비교할 때 기초적 수준”이라며 “기준 또한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기업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은 어떨까?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기금(캘퍼스)은 약 500조 원의 기금 규모를 자랑한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캘퍼스의 2012년 연간 수익률은 13.3%다. 이에 비해 4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은 수익률이 캘퍼스의 절반 수준인 6.9%밖에 못 미쳤다.
캘퍼스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은 까닭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사회적책임 투자에 확실히 개입하기 때문이다. 캘퍼스는 20년 동안 월트디즈니를 이끌던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에게 6년 동안 실적부진 책임을 물어 그를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 사건은 연기금이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캘퍼스의 크고 작은 감시는 미국 내 기업구조개선에 긍정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캘퍼스가 경영에 개입하면 주가가 상승한다는 ‘캘퍼스 효과’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다.
반면 국민연금은 아직까지 몸을 사리고 있다.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과 기업 경영간섭이나 연금사회주의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 만큼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이사장은 지난해 5월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학자 출신이다. 최 이사장이 시장경제 철학을 기반으로 주식시장에서 더욱 공격적 정책과 발언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그 기대는 국민연금이 큰 손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와 맥이 닿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