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보험시장을 36년 동안 독점해온 코리안리가 강적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김기홍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제2의 재보험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종규 코리안리 사장은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견제에 나섰다. 보험업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제2의 재보험회사의 경쟁력을 의심하는 시선도 보낸다.

  원종규의 코리안리 재보험 독점시대 막 내리나  
▲ 원종규 코리안리 대표이사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김기홍 전 부원장보는 이달 초 금융감독원을 찾아 '팬아시아리' 재보험사 설립 계획을 설명하며 예비인가 가능성을 타진했다. 금감위 출신인 정채웅 전 보험개발원장도 법률자문으로 함께 참여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괄적 차원에서 자본금 조달 계획 등을 소개했다”며 “예비인가 신청이 들어오면 구체적 법적 요건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전 부원장보는 특정 대주주 없이 몇몇 출자자가 함께 지분을 나눠서 참여하는 방식으로 재보험회사를 설립할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설 재보험회사에 대한 출자자가 일부 확정된 상태"라며 "여러 출자자가 공동지분을 확보해 향후 증자에도 참여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설 재보험회사 초기 자본금은 3000억 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보험사 설립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이후 재보험회사 설립은 5차례나 시도됐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모두 무산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에도 재보험회사 설립 움직임이 몇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무산됐는데 이번에는 추진력이 강해서 50년 만에 제2 재보험회사 설립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해보험회사 등 금융권은 제2 재보험회사 설립에 대해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제2 재보험회사가 등장하면 코리안리(1963년 설립)의 국내 재보험시장 독점체제에서 경쟁체제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재보험시장 규모는 2012년 매출기준 6조6000억 원 수준이다. 코리안리는 이 시장에서 점유율 65%로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나머지는 외국계 10개 재보험회사가 나눠 갖고 있다.

  원종규의 코리안리 재보험 독점시대 막 내리나  
▲ 김기홍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현 파인트리파트너스 대표)
손해보험회사의 한 관계자는 "코리안리 하나만으로 보험사 보상책임을 모두 분담할 수 없다"며 "코리안리가 국내 수요를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가 재보험회사 설립은 참여 주체들에게 가격이나 효용 등에 있어서 이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종규 코리안리 사장은 재보험시장이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새로운 재보험회사가 경쟁력을 얻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재보험시장 특성상 대형공장, 유조선 등 기업성 보험 비중이 높다보니 작은 규모의 자기자본으로 이들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원 사장은 “3천억~5천억 원의 자기자본으로 재보험사업을 시작하면 길어야 5년을 못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코리안리의 자기자본은 1조5천억 원이다.

원 사장은 또 뮌헨리, 스위스리 등 세계적 재보험회사가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고 코리안리가 이미 이들 재보험회사들과 경쟁하고 있어 국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재보험회사가 모습을 드러낼 경우 코리안리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재보험 수요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안리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원 사장은 지난해 6월 위임사에서 2020년까지 국내 매출 의존도를 77%에서 50%까지 낮추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리는 자기자본 수익률을 고려할 때 해외 재보험회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형 해외 재보험회사들의 국내시장 자기자본 수익률은 20~30%로 높지만, 코리안리는 8~9%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재보험회사의 등장 가능성은 원 사장으로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코리안리 관계자가 "추가로 신규 재보험회사가 진입할 경우 국내 재보험회사간 무리한 가격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