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20일 대통령선거일', 거짓말 같았던 1년

▲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월16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구속연장 후 처음 열린 80차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뉴시스>

‘12월20일 대통령 선거일.’

방을 정리하다 우연히 벽에 붙은 연간 달력을 보게 됐다. 지난해 말 아이 학교에서 이런저런 학사일정을 표시해 놓은 2017년 치 새 달력을 받아 붙여 놓은 것이다.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올해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며 11월과 12월 일정을 들여다보니 대통령 선거일이 눈에 띄었다. 12월20일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빨간’ 날이었다.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말이다.

채 1년도 안 되는 시간이 흘렀는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저 임기말 레임덕이 좀 더 빨리 오는 게 아닐까 짐작했던 것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구여당(자유한국당)의 철벽방어를 뚫고 통과됐고 헌법재판소 탄핵 역시 가결됐다.

대통령 한 사람의 권력누수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미친 파장은 시쳇말로 '어마무시'했다. 조기 대선에 이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숨가쁜 변화가 일었고 그 변화는 아직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재작년 열흘 일정으로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일정 중에는 예전에 3년 정도 살았던 헝가리 부다페스트도 포함됐다. 동유럽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럽 수도규모에서 빠지지 않는 200만 명 가까운 인구가 사는 도시다.

7년여 만에 다시 찾은 것인데 거의 매일 같이 장보러 다녔던 슈퍼마켓 진열대 위치는 물론 상품구색까지 거의 그대로인 것을 보고 추억이 밀려오기보다 오히려 깜짝 놀랐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 부근 상가에 있던 가게 가운데 2곳이 폐점을 하고 사라졌다. 제법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였던 치킨프랜차이즈와 아이스크림 전문점 한 곳이 문을 닫고 철거 인테리어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불과 열흘 동네를 떠난 새 벌어졌던 일이다.

성장이 둔화했다고 하지만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세상 돌아가는 걸 놓치기 일쑤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리고 지난 1년 사이 몇 년 전 유행했던 ‘다이내믹 코리아’를 실감하게 했던 격동의 시기를 보낸 셈이다.

오늘자 뉴스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제기한 수감생활 중 인권침해 문제 제기였다. CNN이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바탕으로 단독보도한 내용인데 법무부와 교정당국이 현재 독방시설 내부를 공개하며 반박에 나선 것을 보면 파장이 만만찮을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구속기간 연장 결정이 내려진 뒤 변호인단 전원 사퇴라는 강수를 내놓은 데 이어 세계를 향해 여론전을 펼치려는 모양새다. 동정론에 불을 지펴 재판에 유리하도록 국면전환을 노리는 셈인데 오히려 전직 대통령 특혜시비로 불붙을 가능성도 커보인다. 

전직 대통령 수감상황을 놓고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니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일하는 후배를 만났는데 박 전 대통령 재판이 시작되면서 좋아진 점이 있다는 것이다.

민사담당 판사여서 실제 박 전 대통령 등 재판정과 얽힐 일이 없는데 재판이 열리는 날마다 건물 난방을 많이, 그리고 오래(공무원 근무시간이 끝나는 6시 이후에도) 틀어주는 것 같다는 것이다.

후배 판사는 6시면 난방 공급이 끊겨 재판 관련 검토할 업무가 많아도 추위에 떨 때가 많았는데 전직 대통령 덕 좀 본다는 얘기를 동료판사들과 한다며 웃었다.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핵심 관련자들이 길고도 긴 법정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항소심까지 고려하면 결론이 나기까지 앞으로도 긴 시간이 남은 듯 보인다.

한 달 후쯤 12월20일이 다가올 테다. 그 날짜는 이제 올해 달력에서 역사적으로 크게 의미 없는 날이 돼버렸지만 주권자로서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박 전 대통령 자신부터 인권을 운운하며 처지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는 없는지 묻고 싶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