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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조양호 회장이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진칼과 대한항공이 주식을 맞교환하게 되면서 조양호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자금을 들이지 않고 지주회사 한진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은 순환출자 해소와 한진해운 자회사라는 장애물이 남아있다.
지주회사체제 전환과 함께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경영권 승계도 주목받는다.
조양호 회장의 세 자녀는 아직 어느 누구도 확실한 우위에 서있지 않다. 주요계열사에 대한 셋의 지분율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3명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진그룹이 지난해 8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을 꾀하면서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은 지주회사 한진칼의 대표이사가 됐다.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올해 초 정석기업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맏딸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역시 지난 4월 한진관광 대표이사직을 맡게 되면서 3남매가 한진그룹 계열사 대표이사로 속속 이름을 올렸다.
◆ 속도 내는 지주사 전환
한진그룹은 한진칼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오는 11월20일까지 1조 원이 넘는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대한항공 주식을 공개매수한 뒤 이에 응한 주주들에게 한진칼 주식을 주는 방식이다.
유상증자를 통해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율을 20% 이상으로 높일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내년 8월까지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율을 2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현재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을 6.88% 보유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 유상증자로 한진칼이 최소 10.1%에서 최대 51.1%의 대한항공 지분을 추가로 확보할 것으로 본다.
조 회장과 세 자녀의 한진칼 지분율은 현재 10%에서 최대 21.1%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특수관계인을 모두 포함하면 지분율이 50%를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로써 오너 일가가 한진칼을 지배하고 한진칼이 대한항공을 자회사로 두는 구조가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3월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밝히고 8월 대한항공을 한진칼과 대한항공으로 인적분할했다. 한진칼은 자회사 관리와 신규사업투자 등 지주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완료 시점은 내년 7월 말이다.
한진칼은 현재 칼호텔네트워크 100%, 한진관광 100%, 정석기업 48.3%, 제동레저 100%, 진에어 100%, 파스여행정보 67.4%, 대한항공 6.88%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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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오른쪽)과 레이 코너 보잉사 사장이 지난해 6월 대한항공의 차세대 항공기 구매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대한항공> |
◆ 남은 과제는 순환출자 해소와 한진해운
그러나 아직 과제가 남아있다. 한진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끝내려면 정석기업→한진→한진칼→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석기업은 한진 지분을 19.41%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한진은 한진칼 지분을 9.87% 들고 있고 한진칼은 다시 정석기업 지분을 48.27% 소유하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한진그룹이 한진을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지주사를 한진칼, 정석기업과 합병해 통합지주사를 출범시킬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
정석기업은 조양호 회장이 27.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대주주의 지분율이 가장 높다. 또 한진은 그룹의 핵심인 대한항공 지분을 9.87% 소유하고 있다. 결국 조양호 회장이 보유한 정석기업 주식과 한진이 보유한 대한항공의 주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항공 밑으로 들어온 한진해운도 문제로 떠오른다.
지난 6월 대한항공은 4천억 원 규모의 한진해운 유상증자에 참여해 한진해운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의 지분 33.2%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품으면서 공정거래법상 증손회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조건이 새로 생겼다. 공정거래법은 일반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증손회사)를 두려면 지분 100%를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진칼→대한항공→한진해운→계열사(증손회사)의 구조가 된다고 볼 때 한진해운은 계열사 지분을 100% 확보해야 한다.
현재 한진해운이 지분을 모두 들고 있는 계열사는 한 곳도 없다. 11개 계열사의 지분을 대부분 50~60% 안팎으로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을 어기지 않으려면 지분을 모두 사들이거나 모두 파는 수밖에 없다.
◆ 3세 경영은 어떻게 되나
한진그룹의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한진그룹 3세들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조양호 회장의 세 자녀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경영전략 및 영업부문 총괄 부사장은 현재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조 부사장은 조중훈 창업주의 장손이기도 하다. 조양호 회장이 장남으로서 그룹을 물려받았듯 이번에도 장자승계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조 부사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조양호 회장과 함께 한진칼의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그룹의 핵심계열사인 대한항공에서 경영전략 및 영업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요직을 맡고 있다.
조 회장이 조 부사장에게 그룹 지주사를 맡김으로써 후계구도를 명확히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전환과 한진해운의 계열사 편입, 앞으로 있을 신규투자 등 그룹의 중대 현안들이 모두 한진칼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조 부사장이 이런 역할을 잘 마무리할 경우 후계자의 입지가 한층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조 부사장은 경영능력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대한항공의 핵심사업인 화물부문을 맡아 올 1분기에 매출액과 수송량을 함께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룹의 핵심계열사를 이끄는 만큼 위험부담도 크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조 부사장의 현재 지분율은 형제들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진그룹의 후계구도가 거의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동시에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지분율 때문이다.
조 회장의 자녀 3명은 모든 계열사의 지분 보유율이 거의 비슷하다. 3명 모두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각각 1.08%, 한진은 0.03%씩 동일하게 나눠 갖고 있다.
지난달 말 3남매는 각각 1.28%씩 보유하던 정석기업 지분을 동시에 모두 팔았다.
정석기업은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위해 지주사인 한진칼과의 합병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곳이다.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3남매가 지분을 처분하자 많은 추측이 쏟아졌다.
이들이 당시 주식 매각으로 얻은 돈은 178억1100만 원가량이다. 업계는 이들이 이 자금을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는 데 쓰거나 증여세를 납부하기 위해 쓸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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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배국환 인천시 정무부시장.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이 지난달 20일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트타워 앞에서 테이프 커팅을 한 뒤 건배하고 있다.<대한항공> |
◆ 호텔사업을 확대하는 이유 있나
조현아 부사장은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 부사장은 지난 23일 LA에서 ‘커크 킨셀’ 인터콘티넨탈호텔그룹 미주지역 대표를 만나 윌셔그랜드호텔의 인터콘티넨탈 브랜드 위탁운영 계약을 맺었다.
윌셔그랜드호텔은 한진그룹이 1조2천억 원 이상을 투자해 재개발중인 호텔이다. 15층 규모의 호텔을 2017년까지 상업시설을 갖춘 73층 규모의 초대형 호텔로 만드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원래 지금보다 작은 규모로 지을 예정이었지만 호텔부문을 강화하자는 조 부사장의 제안에 따라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부사장은 지난달 20일 인천 중구 운서동 ‘그랜드하얏트인천’에서 열린 ‘웨스트타워’ 개관행사에 조양호 회장과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웨스트타워가 개관하면서 그랜드하얏트인천은 하얏트호텔 가운데 북미권을 제외하고 가장 큰 호텔이 됐다. 이 사업 역시 조현아 부사장이 주도했다.
조현아 부사장은 한진그룹이 항공사업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으로 키우려 하는 호텔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대한항공 내부에 뒀던 호텔사업을 지난해 한진칼의 별도 자회사인 칼호텔네트워크로 떼어낸 뒤 성장세에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호텔사업 매출은 2011년 550억 원이었으나 2013년 855억 원으로 커졌다. 2012년 말 1937억 원이던 자산규모도 지난해 말 5086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 항공사업과 균형 맞추기 위해 무리한 확장 우려
재계는 한진그룹이 호텔사업을 강화하는 이유에 대해 경영권 승계과 관련 있다고 본다.
조 회장이 혹시 있을지 모르는 경영권 분쟁을 막기 위해 항공사업으로 크게 편중된 그룹의 사업비중을 재편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호텔 개관식에 조 부사장과 함께 참석하고 조 부사장의 관광사업에 자금도 대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번 달 조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왕산레저개발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300억 원을 출자했다. 지난 3월에도 1조2천억 원 수준의 LA호텔 건립사업의 자금마련을 위해 유상증자 방식으로 1075억 원을 지원했다.
조 부사장도 더욱 적극적으로 호텔사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조 부사장은 이제 6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던 서울 경복궁 옆 특급호텔 조성에 힘을 쏟으려 한다.
조 부사장은 그룹 내 호텔사업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 사업을 꼭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한진그룹은 인천과 제주도, 하와이 등 국내외에 6개의 호텔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서울에 호텔이 없다. 앞으로 롯데호텔, 신라호텔 등의 특급호텔과 경쟁을 벌이려면 서울시내에 특급호텔이 꼭 필요하다. 여기에 들어갈 총 공사비는 7천억 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의 재무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확장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윌셔그랜드호텔과 경복궁 옆 특급호텔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합치면 1조9천억 원에 달해 대한항공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금액이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을 품으면서 재무상태가 악화된 상황에서 호텔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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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
◆ 계열분리 가능성은 있나
3남매가 지주사 전환 후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원태 부사장이 대한항공 등 핵심사업을 물려받고, 조현아 부사장과 조현민 전무가 각각 호텔업과 저가 항공사 진에어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3남매가 각자의 분야에 주력하고 두각을 나타내면서 이런 전망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항공이나 호텔, 관광 등 각 부문별 시너지효과가 큰 상황에서 쉽게 계열을 분리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아직 3세들의 나이가 어려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조현아 부사장이 1974년생, 조원태 부사장이 1975년생, 막내 조현민 전무가 1983년생이다. 한진그룹은 여전히 조양호 회장의 활동력에 의지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2002년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약 1년 만에 계열분리에 나섰고 현재 대부분 완료됐다.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정호 4형제가 각자 대한항공과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메리츠종금증권을 가지고 독립했다. 현재 조수호 회장이 이끌던 한진해운을 제외하면 모두 계열분리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