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의 맏형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김 사장이 추진해 온 금융지주사 전환이 사실상 정지된 데다 자살보험금과 관련된 금융감독원의 제재도 앞두고 있는 점은 부담이다.
◆ 김창수, 삼성그룹 금융계열사 맏형 노릇할까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 사장은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그룹의 오너리스크가 발생한 상황에서 역할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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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1심 판결이 나오는 5월 말까지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사장단의 협의체제를 꾸려 전체 그룹의 현안을 챙기고 주요 계열사별로 각자 의사결정하는 체제를 갖출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그룹은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이건희 회장이 물러난 뒤 이수빈 당시 삼성생명 회장과 이윤우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장단협의체를 이끌었다.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의 중심축인 삼성생명을 맡고 있는 김 사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김 사장이 그동안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하는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 재편을 주도하면서 주요 현안을 처리해온 만큼 삼성그룹 차원에서 ‘안정’에 초점을 둘 경우 김 사장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김 사장의 임기가 이미 1월에 끝난 데다 이 부회장의 구속에 따라 김 사장이 추진해온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지주사 전환이 어려워진 점을 감안하면 입지는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김도하 KB증권 연구원은 20일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핵심 금융계열사로서 지배구조와 관련 기대감이 할증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며 “그러나 최근 삼성그룹의 정황상 중대한 의사결정과 관련된 기대는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했다.
삼성생명 주가는 20일 전날보다 0.94%(1천 원) 떨어진 10만5천 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14일(11만1천 원) 이후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다른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같은 기간에 혼조세를 보인 것과 비교된다.
중간금융지주사 제도 도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하는 금융지주사 전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부회장이 실형을 받을 경우 대주주 결격사유가 발생한다. 보험회사사 대주주는 일반 형사재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대주주 자격이 박탈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넘겨받더라도 삼성생명의 단순 금융지주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도 어려워지는 셈이다.
◆ 금감원의 자살보험금 관련 제재도 변수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미지급과 관련된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 결과가 23일에 발표되는 점도 김 사장에게 부담이다.
금감원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에게 최고경영자 문책경고 등을 포함한 중징계를 예고했다. 최고경영자가 문책경고 징계를 받으면 3년 동안 금융회사 임원을 맡을 수 없고 해임권고의 경우 기간이 5년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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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이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
김 사장의 임기가 1월 말에 이미 종료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책경고 이상의 조치가 내려질 경우 삼성생명은 3월 정기 주주총회 이후 경영공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이 등기임원에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해 금감원의 제재수위에 따라 김 사장의 연임 및 교체 여부가 다른 삼성그룹 계열사 인사와 달리 일찍 앞당겨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김 사장의 연임 또는 교체 여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며 “인사 시기도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만큼 3월 주총에서 결정되거나 그 뒤로 미뤄질 가능성 모두 열려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금감원의 제재수위 정도와 적용시기 모두 불확실하기 때문에 인사에 이를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