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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계 블랙리스트' 존재를 폭로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참고인 신분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헌법은 양심과 언론,출판,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블랙리스트는 이런 헌법적 가치를 정면에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3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고 진술했다. 유 전 장관은 이날 특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블랙리스트는 분명히 있었고 김 전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뒤 주도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좌익이라는 누명을 씌워 차별.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는 우리사회의 민주질서와 가치를 훼손하는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인물들이 모두 의혹을 부인하는 것과 관련해 “체제수호를 위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모욕을 주고 핍박했다”며 “모든 조치를 다 강요했으면서 이제 와서 자기네들은 모른다, 안 했다고 하는 태도는 너무 비겁하다”고 쏘아붙였다.
박근혜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유 전 장관은 2014년 7월 자리에서 물러난 뒤 언론인터뷰에서 “퇴임 한달 전 블랙리스트를 봤다”고 말한 바 있다.
특검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뒤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보낸 것으로 파악한다.
유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도자로 김 전 실장을 지목하면서 특검은 박 대통령을 향한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간담회를 통해 블랙리스트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관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특검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계 인사가 1만 명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만큼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고 보고 있다.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이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고 국가정보원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수사대상에 올랐다. 권력기관들이 모두 동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 측은 단순히 부인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고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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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
언론보도와 관련해 박 대통령 측이 직접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사실상 처음인데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검의 뇌물죄 수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대통령 측은 한숨돌렸지만 블랙리스트 수사에서는 궁지에 몰린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구속된 데 이어 유 전 장관까지 특검에서 관련 진술을 한 마당에 무작정 ‘관여한 바 없다’고 부인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야당은 블랙리스트의 몸통은 박 대통령이라며 특검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블랙리스트 작성 행위는 공권력을 이용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한 중대범죄”라며 “그 자체로 탄핵사유”라고 비판했다.
추 대표는 “이 정도면 박근혜 게이트와 별개로 블랙리스트 게이트라고 불러야 할 정도”라며 “특검은 흔들림없이 대통령 대면조사로 블랙리스트 게이트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