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J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으로 일컬어졌던 멀티플렉스 3사 시대가 저물고 있다. CJCGV는 시험대에 올랐다.
1998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들어선 뒤 영화관 산업이 재편되면서 한 시대를 이끌었던 단관극장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사라지는 장면이다.
2025년은 26년여 전 모습과 결이 같다.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탓에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면서 멀티플렉스 시대를 주도했던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정종민 CJCGV 대표이사와 방준식 CJ4D플렉스 대표이사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힘을 합치면 CJCGV가 보유한 것보다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한다. 오랜 시간 굳어졌던 극장 업계 1위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9일 극장업계에 따르면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이 합병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멀티플렉스 업계가 26년 만에 3사 체제에서 2차 체제로 재편을 가시화하고 있다.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은 현재 구체적인 합작법인 설립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태지만, 올해 안에 구체적인 지분 조정을 통해 내년에 합병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합병 추진은 굵직한 소식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을 김문수 대통령 선거 후보와 한덕수 후보의 단일화 이슈에 빗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단일화’로도 부른다.
합병이 이뤄지면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합병법인의 스크린 수는 업계 1위인 CJCGV를 앞서게 된다. CJCGV가 보유한 스크린 수는 현재 1346개고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보유한 스크린 수는 각각 915개, 767개다. 합병법인의 극장 점유율도 CJCGV보다 유사하거나 소폭 높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CJCGV로서는 두 회사의 합병이 달갑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CJCGV는 1분기 소폭의 영업이익을 내며 8개 분기 연속으로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하지만 국내 사업만 봤을 때는 극도로 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CJCGV가 국내 영화 사업과 관련해 1분기 기록한 영업손실은 310억 원이다.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사상 최대 영업이익으로 각각 189억 원, 129억 원을 낸 것을 감안하면 국내 영화사업의 성과가 해외사업의 성과를 모두 까먹은 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 -11억 원에서 흑자전환하며, 가장 이익 폭이 컸다. 베트남은 지난해 1분기 112억 원에서 17억 원 정도 수익이 증가한 것에 불과하며, 이 외에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등은 오히려 적자전환하며 이익을 갉아먹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사업에서 경쟁했던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손을 잡는다는 사실은 CJCGV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합병 추진은 정종민 CJCGV 대표이사(왼쪽)와 방준식 CJ4D플렉스 대표이사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정 대표는 2012년 CJCGV에 입사해 마케팅담당자와 국내사업본부장 거쳐 튀르키예법인장 역임한 뒤 체질 개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CJCGV 수장에 올랐다.
그는 3월 타운홀 미팅에서 “국내 영화산업 다소 침체돼 있지만 찬바람이 불더라도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탄탄한 체질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며 “스크린X와 4DX 등 CGV만이 할 수 있는 미래가 유망한 분야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극장 플랫폼 경쟁력 강화와 동시에 고객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중심으로 CJCGV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과 별개로 경쟁기업이 손을 잡는 것과 관련한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CJCGV의 자회사인 CJ4D플렉스의 수장인 방준식 대표이사 역시 멀티플렉스 업계의 대격변에 따라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방 대표는 1990년생으로 CJ그룹의 최초 30대 최고경영자(CEO)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물이다. 미국 뉴욕대학교 출신으로 오리온과 3D 애니메이션 회사를 거쳐 2018년 CJ4D플렉스에 합류했다.
콘텐츠사업팀장과 콘텐츠사업혁신TF장 등을 역임하며 스크린X 기술을 적용한 특화 콘텐츠 기획하고 해외 시장에 유통하는 등 글로벌 사업 확대 주도한 공로로 2024년 2월 경영리더로 승진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정종민 대표가 4D플렉스를 통한 극장 경험의 차별화로 CJCGV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로 했는데 이 막중한 임무를 방준식 대표가 함께 이끌어야 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방 대표는 4D플렉스의 영향력을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2025년 4월 기준으로 전 세계 75개 나라에 1218관을 운영하는 특별 상영관의 개수를 중장기적으로 2천 개까지 넓히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4D플렉스에서 내는 매출은 2030년까지 6배로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가지고 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 추진 계획도 계속 밟아나가고 있다. CJ4D플렉스는 3월 미국 영화관 사업자인 AMC와 파트너십 체결해 전 세계 65개 나라에 스크린X 및 4DX 상영관 개설 추진하기로 했다.
AMC는 전 세계 극장 900여 곳에 스크린 1만여 개를 운영하고 있는 곳 글로벌 영화관 사업자다. AMC가 주요 전략 시장에 4D플렉스 영화관을 선보이면 앞으로 오프라인에서 줄 수 있는 차별화한 경험을 중심으로 영화관 사업에 새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