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신격호는 "예술품 만들라" 했다, 롯데웰푸드 가나초콜릿 50년 역사로 꾸민 아뜰리에

▲ 그라플렉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 ‘볼드’와 도형 ‘픽셀’을 사용해 초콜릿이 주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특별 전시 ‘아뜰리에 가나’에 전시된 그라플렉스 작가의 작품.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전시관 입구부터 달달한 냄새가 났다. 과하지 않게 은은한 초콜릿 향이다.

롯데웰푸드가 ‘가나초콜릿’의 국내 출시 50주년을 맞이해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 마련한 특별 전시 ‘아뜰리에 가나’. 가나초콜릿의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전시 내내 느낄 수 있도록 특별 조향했다는 롯데뮤지엄의 노력이 잘 느껴졌다.

전시는 가나초콜릿의 50년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전시 제목인 ‘아뜰리에’는 프랑스어로 공방이나 작업실을 의미한다. 현대미술 작가 5명과 협업해 가나초콜릿이 지닌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라플렉스와 김미영, 코인 파킹 딜리버리, 박선기, 김선우 등은 이번 전시를 요청받아 각자가 느낀 가나초콜릿을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했다.

‘픽셀’이라는 도형과 ‘볼드’라는 캐릭터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작가 그라플렉스는 초콜릿을 이렇게 표현한다.

“점포의 선반 위에 놓인 초콜릿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포장에 싸여진 초콜릿 또한 나에게 의미가 없다. 포장을 뜯고 조각이 된 초콜릿을 입에 넣는 순간, 초콜릿은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사랑이 된다.”

그는 미키마우스를 닮은, 하지만 얼굴이 없는 다소 파격적인 캐릭터 볼드를 통해 가나초콜릿이 주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라플렉스의 다소 괴이한(?) 캐릭터 모습에 성인들은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렵지만 아이들이라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저마다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는 도슨트의 설명이 뒤따랐다.
 
[현장] 신격호는 "예술품 만들라" 했다, 롯데웰푸드 가나초콜릿 50년 역사로 꾸민 아뜰리에

▲ 김미영 작가는 초콜릿을 상징하는 색상 브라운을 바탕으로 초콜릿의 질감을 표현한 작품을 내놨다. <비즈니스포스트> 

동양화를 전공한 김미영 작가는 초콜릿을 상징하는 질감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부드러움과 촉촉함, 그리고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달콤함과 여유 등의 다양한 감정을 섬세한 붓터치로 캔버스에 담아냈다.

김 작가는 “꾸덕꾸덕한 질감의 물감 덩어리를 나의 회화 안에 생동감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주 사용하게 되면서 많은 분에게 자주 듣곤 했던 말은 ‘만지고 싶은 그림’이라라는 것이었다”며 “매력적인 초콜릿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색상의 물감과 다양한 재료를 혼합하며 내가 이해하고 있는 초콜릿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밀도를 작품에서 느낄 수 있도록 구현해봤다”고 작가노트를 통해 설명했다.

얼굴 없는 작가로 유명한 코인 파킹 딜리버리는 초콜릿을 함께 나눌 때 행복이 더해진다는 관계의 의미를 설치미술로 풀어냈다.

작가의 대표 캐릭터인 ‘시라이상’과 초콜릿을 결합해 초콜릿을 쪼개는 행위가 단순한 음식 나눔을 넘어 행복과 감정을 나누는 행위를 표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고민하면서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감정을 주고받는 행위가 실질적 행위가 아닌 이모티콘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고 한다.

인상적인 작품은 조각을 전공한 박선기 작가의 설치미술이었다.

거대한 공간에 수직으로 매달린 숯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감정이 온몸을 압도했다. 다 타버린 나무이기도 하지만 다시 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묘한 재료인 숯을 오래 전부터 주목해온 박선기 작가는 초콜릿과 숯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숯은 그 자체로 실재이면서 동시에 그 원형이었던 식물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식물의 생애 주기의 마지막 지점이면서도 불을 지피는 시작점에 있는 물성을 통해 견고성 너머에 있는 부서지기 쉬움, 즉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존재의 소멸과 탄생을 동시에 표현한다.”
 
[현장] 신격호는 "예술품 만들라" 했다, 롯데웰푸드 가나초콜릿 50년 역사로 꾸민 아뜰리에

▲ 박선기 작가는 숯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존재의 소멸과 탄생을 의미할 수도 있는 초콜릿을 구현해냈다. 이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초콜릿을 쪼개는 구분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1988년생 젊은 작가인 김선우 작가는 멸종한 비운의 새 도도새의 이야기를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작품을 모티프로 차용해 펼치며 가나초콜릿의 50년 여정을 표현해냈다.

롯데웰푸드는 전시 중간에 가나초콜릿의 옛 광고 영상을 틀며 관객들로 하여금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배우 채시라씨가 17살 때인 1984년 출연한 가나초콜릿 광고가 나올 때 60대의 한 관객은 “어머 채시라 젊은 것좀 봐”라며 추억에 잠겼다.

가나초콜릿은 롯데웰푸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상품이다.

“제품이 아니라 예술품을 만들어 주시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1962년 일본 도쿄 집무실에서 세계적인 초콜릿 기술자인 막스 브락스씨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껌으로 성장한 롯데그룹이 초콜릿 시장에 첫 발을 떼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신격호 창업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가나초콜릿’은 1964년 일본에 처음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다. 일본 정부가 1964년 10월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긴축정책을 펼친 탓에 여러 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일본 롯데가 내놓은 가나초콜릿만은 제품이 없어서 못 팔았을 정도다.

한국에서도 가나초콜릿은 ‘스테디셀러’다. 롯데웰푸드의 전신인 롯데제과가 1975년부터 가나초콜릿을 생산하고 있다. 출시 이후 2024년까지 팔린 가나초콜릿만 1조4천억 원어치다. 수량으로 환산하면 약 68억 갑이다.

신격호 창업주는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에서 세계 명품 수준의 품질을 갖춘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매일 아침 껌을 씹은 뒤 여러 초콜릿을 맛봤다고 돌아봤다. 초콜릿 기술자를 구하기 위해 독일 매체에 구인광고를 내기도 했고 사람들을 보내 낯선 유럽 곳곳을 누비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롯데웰푸드가 마련한 전시 ‘아뜰리에 가나’는 6월29일까지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린다.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는 도슨트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