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저널]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이 법조인 CEO 택한 이유, 그 계보는 닌텐도에서 시작됐다

▲ 현재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두 대형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최고경영자(CEO)는 모두 법률가 출신이다. 과연 왜 논리와 이성의 대표주자인 법조인 출신이 '창의'와 '감성'의 산업인 게임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게임은 콘텐츠다. 그리고 콘텐츠는 창의와 감성의 산업이다. 반면 법은 규율과 질서, 논리와 이성의 영역이다. 

이 둘은 얼핏 상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두 대형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최고경영자(CEO)는 모두 법률가 출신이다.

엔씨소프트는 2024년, 김앤장 출신의 박병무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넷마블은 2025년 정기주총을 통해 기존의 권영식-김병규 공동대표 체제에서 법무 출신의 김병규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두 사람 모두 ‘법률’에서 출발해 게임업계 최고 경영자가 됐다.

왜 게임회사들은 게임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법률가 출신 CEO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일까?

◆ ‘IP 분쟁’과 ‘중국 리스크’, 법률 감각이 필요한 산업

기업이 법률 전문가를 CEO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M&A와 구조조정, 내부통제 강화, 법률 리스크 대응 등 때문이다.

게임업계도 다르지 않다. 다만 최근 게임업계의 흐름을 보면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볼 수 있다. 바로 ‘IP(지식재산권) 전쟁’이다.

엔씨소프트는 국내 게임업계에서 ‘리니지 라이크’의 원조를 자처하며 수년간 수많은 유사 게임들과 법적 분쟁을 치러왔다. 리니지 시리즈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엔씨소프트에게 ‘리니지 라이크’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것은 생존 문제에 가깝다.

넷마블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병규 대표가 넷마블의 공동대표에 오른 시점은 넷마블의 대표작인 ‘세븐나이츠’를 둘러싸고 마상소프트와 저작권 2심 소송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결국 넷마블은 이 소송에서 승리했고, 세븐나이츠는 넷마블의 대표 IP로 남을 수 있게 됐다.

특히 넷마블은 마블 콘테스트 오브 챔피언스, 일곱 개의 대죄:그랜드크로스, 제2의나라:크로스월드 등 주요 게임들 가운데 외부 IP가 많다는 점에서 IP 관리에 더욱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기도 하다.

게임회사에 법률가 출신 CEO가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2023년 말부터 국내 게임사에 대한 판호 발급을 재개하면서, 한국 게임업계는 다시 중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콘텐츠 규제는 까다롭기로 유명하고 자체 규제를 따르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제재 역시 강력하다. 자칫하면 중국 내 유통망이 전면 차단되거나, 현지 기업과의 IP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게임업계에서 가장 큰 시장 가운데 하나인 중국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선제적 법률 대응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 ‘동키콩 소송’ 이긴 닌텐도의 하워드 링컨, 법률가 CEO의 원형

최근 국내 게임업계에서 법률가 출신 CEO를 내세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이 최초는 아니다. 법률가 출신 게임회사 CEO의 계보는 198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닌텐도는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로부터 ‘동키콩’이 자사의 ‘킹콩’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닌텐도는 당시 외부 법률 자문을 맡고 있던 젊은 변호사 하워드 링컨에게 사건을 맡겼다.

당시는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설립 초기였고, 유니버설은 거대 영화사였다. 모두가 이 싸움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봤다. 실제로 당시 유니버설은 저작권 소송을 통해 이미 여러 기업들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링컨은 유니버설이 ‘킹콩’의 저작권을 정식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입증하는데 성공했고, 닌텐도는 법정 싸움에서 완승했다.

이 승리를 계기로 닌텐도는 하워드 링컨을 정식으로 영입했다. 그는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상무, 부사장을 거쳐 2대 사장이 됐고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과 함께 닌텐도의 북미 전성기를 이끌었다.

링컨은 닌텐도뿐 아니라 서드파티 게임사들의 IP도 엄격하게 관리하며, 닌텐도를 ‘IP 관리의 교과서’로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소송을 막는 것을 넘어, 회사의 자산을 전략적으로 지켜내고 키워내는 역할까지 법률가 출신 CEO가 맡게 된 셈이다.
  
[씨저널]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이 법조인 CEO 택한 이유, 그 계보는 닌텐도에서 시작됐다

▲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에 위치한 닌텐도 사무실에서 닌텐도의 캐릭터 '동키콩'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하워드 링컨 전 닌텐도오브아메리카 최고경영자(왼쪽)과 아라카와 미노루 닌텐도오브아메리카 창립자. <닌텐도 메모리즈 X 갈무리>

◆ 게임은 예술이 아니라 상품이다, 게임회사에 ‘관리형 CEO’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임산업은 언제나 창의성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내세워왔다. 하지만 그 창의성은 점점 관리가 필요한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슈퍼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는 “나는 예술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예술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예술성, 혹은 대중성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상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법률적 리스크, 각 국가별 규제, IP 보호 등 법률과 제도를 읽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게임산업이 성장하면서 법률가 CEO뿐 아니라 재무전문가인 도기욱 넷마블 전 대표이사 등 ‘관리형 최고경영자’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