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강석훈 한국산업은행회장이 임기 막판 한화오션 지분 매각에 속도를 낸다.

임기 초반 대우조선해양(현재 한화오션) 새 주인 찾기에 성공한 뒤 한화오션 지분 매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모양새다. 강 회장이 산업은행 건전성 강화를 위해 HMM 지분 매각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할 가능성도 나온다.
 
강석훈 산업은행 임기 막판 미션들, 한화오션 인연 털고 HMM 지분 매각 속도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한화오션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 사진은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 모습. <연합뉴스>


29일 산업은행에 따르면 보유하고 있는 한화오션 지분 19.5% 가운데 일부를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하기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2022년 말까지만해도 대우조선해양 지분 55.68% 들고 있었으나 다음 해인 2023년 한화그룹에 최대주주 지위를 넘기며 현재 지분율을 완성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2023년 5월 한화그룹으로 대우조선해양의 경영권이 이양되고 실적 개선 등 경영정상화라는 구조조정 목적이 달성됐다”며 “당시 보유지분을 적절한 시기에 매각하기로 했는데 최근 업황이 좋아졌고 구조조정 목적도 달성되면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이번 수요예측을 바탕으로 한화오션 지분을 지속해서 줄여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이 한화오션 지분을 중장기적으로 다 털어낸다면 2000년부터 이어진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의 기나긴 인연도 끝나게 된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연은 대우그룹이 옥포조선소를 인수하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 형태 지분을 보유한 것은 2000년부터다.

산업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대우그룹이 해체된 뒤 2000년 출자전환을 통해 대우중공업에서 분리된 대우조선공업 최대주주에 올랐고 2002년 회사 이름을 대우조선해양으로 바꿨다. 이후 민영화를 위한 매각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8년과 2019년이 대표적이다.

산업은행은 2008년 한화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그해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에 발목이 잡혀 2009년 계약이 최종 결렬됐다. 2019년에는 현대중공업과 본계약까지 체결했지만 2022년 유럽연합(EU)의 인수 불허 결정에 또 다시 매각이 무산됐다.

강석훈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강 회장은 2022년 6월 산업은행 회장에 오른 뒤 그해 초 현대중공업의 인수가 무산된 대우조선해양 매각전에 속도를 내 9월 한화그룹을 인수예정자로 선정했다.

사실상 취임과 동시에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진두지휘해 성과를 낸 것이다. 강 회장은 2023년 6월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잘한 일로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꼽기도 했다.

강 회장은 임기 내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힘을 실으며 노조와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수시로 갈등을 일으켰다.

이런 정치적 논란에 가려졌지만 강 회장은 교수 출신 경제전문가로 산업은행을 이끄는 동안 대우조선해양 매각뿐 아니라 대한항공 아시아나 합병과 쌍용차 매각 마무리, 태영건설 구조조정 등 굵직한 과제들을 안정적으로 풀어냈다.

강 회장은 2022년 6월7일 임기를 시작해 6월6일 3년 임기가 끝난다. 6월3일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강 회장의 연임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강 회장이 임기 막판 잔여 지분 매각으로 임기 초반 새 주인을 찾아준 한화오션과 인연 정리 작업의 의지를 보였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강 회장의 한화오션 지분 매각 결정은 산업은행의 체질 개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산업은행이 한화오션 지분을 처분하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지며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분야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13.9%로 국내 주요 은행 가운데 가장 낮다. 지난해 3분기 말 14.36%에서 3%포인트 넘게 빠진 것으로 금융당국 권고치인 13%를 살짝 웃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 현물출자를 비롯해 2조4천억 원 가량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는데도 반짝 효과를 보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서도 2월 650억 원, 3월 1550억 원 등 2천억 원이 넘는 증자를 진행한 데 이어 추가 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국내 산업 육성 등을 이끄는 국책은행으로 자기자본비율이 낮으면 투자 여력이 줄어 새로운 투자를 진행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강 회장은 취임 이후 국내 첨단전략산업 투자를 두고 여러 차례 골든타임을 강조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에 3년 동안 100조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대한민국 리바운드 프로그램’도 새로 내놨다.

산업은행이 신규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자기자본비율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데 한화오션과 같은 주식 자산 매각은 비율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BIS 자기자본비율을 산출할 때 분모에는 위험가중자산(RWA)이 들어간다. 주식 자산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중치가 부여돼 주식 자산을 매각하면 위험가중자산을 줄일 수 있다.
 
강석훈 산업은행 임기 막판 미션들, 한화오션 인연 털고 HMM 지분 매각 속도

▲ 산업은행이 BIS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HMM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나온다. 사진은 HMM 선박 모습.  < HMM >


강 회장이 이와 같은 이유로, 위험가중자산을 줄이기 위해 남은 임기 중 HMM 지분을 매각하기 위한 정지 작업을 할 가능성도 나온다.

강 회장은 23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넥스트라운드 실리코밸리’ 행사 이후 기자들과 만나 “HMM 지분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 규정상 은행이 특정기업 지분을 자기자본 대비 15% 이상 들고 있으면 15%가 넘는 지분에는 위험가중치 1250%가 적용된다.

HMM의 경우 주가가 1만8600원대에 오르면 위험가중치 1250%가 적용되는데 HMM 주가는 전날 1만8660원에 장을 마쳤다.

강 회장은 “HMM 주가가 2만5천 원을 넘어가면 BIS 자기자본비율 13%가 위험해진다”며 아무리 말년 병장이라도 산업은행을 위험 상황으로 내몰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