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BK·영풍 연합 측이 지난 2월3일 법원에 낸 고려아연 1월 임시 주주총회 결의 무효 가처분 신청 결과에 따라 향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가처분 신청은 지난 1월23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총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는 것과 주총에서 선임된 새로운 이사 7인의 직무를 정지시켜 달라는 내용이 뼈대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면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의 의결권 부활에 따라 MBK·영풍 연합 측이 3월 정기 주총에서 경영권 장악 시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고려아연 측이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유리한 고지에 설 것으로 예측된다.
19일 고려아연, MBK·영풍 측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양측은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 됐던 지난 1월 임시 주총에서 최대주주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된 것을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MBK·영풍 측은 고려아연 지분 40%를 확보하면서 우호세력 포함 지분 36%를 모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에 비해 의결권 지분 싸움에선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임시 주총 전날 고려아연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의 영풍 지분 10.3% 인수가 상황을 180도로 뒤집었다.
SMC 지분 인수로 영풍→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C→영풍의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됐고, 고려아연 주주총회가 상법의 상호주 제한 규정을 들어 영풍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며, 최 회장 측은 임시 주총 표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MBK·영풍 측은 즉각 반발하며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지난 3일에는 임시 주총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는 취지의 가처분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가처분 신청의 법원 심문기일은 오는 21일로 잡혀 있다. 법원은 영풍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 것이 적법한 것인지 살펴 오는 3월까지는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가처분 인용 여부를 결정지을 쟁점은 SMC의 ‘상법상 형태’를 무엇으로 보느냐다. 국내 상법의 상호주 제한 규정은 ‘국내 주식회사’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아연 측은 SMC가 ‘주식회사’라며 상호주 규정을 적용해 영풍 의결권을 제한한 것은 적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데 비해 MBK·영풍 측은 SMC가 ‘외국회사’이자 ‘유한회사’라며 상호주 규제에 따른 의결권 제한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또 SMC가 호주 법률에 근거한 해외법인으로 상호출자 금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영풍 주식 취득에 제한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SMC가 자본금·주식·주주유한책임 등을 본질로 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MBK·영풍 측은 금융감독원 공시 상 고려아연이 SMC를 유한회사로 명시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앞서 2013년 한라그룹이 계열사 ‘마이스터’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바꿔 제한된 의결권이 되살아난 사례가 이번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4월 한라건설 유상증자에 마이스터가 참여하면서 한라건설-만도-마이스터-한라건설의 순환출자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한라건설이 보유한 만도 지분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됐다. 같은 해 5월 한라건설의 만도 지분 의결권 상실로, 만도가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한라그룹은 마이스터를 유한회사로 전환시켜 한라건설의 만도 지분 의결권을 살렸다.
법원이 MBK·영풍 측 손을 들어준다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으로 기울었던 경영권 분쟁 승기가 MBK·영풍 측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MBK·영풍 측이 영풍 의결권 행사를 가능케 해달라는 후속 가처분 신청을 낸다면, 법원은 비슷한 논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 해석이다.

▲ 지난 1월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인 영풍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됐다. MBK·영풍 연합이 주총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해 오는 21일 법원이 심문기일을 열 예정이다. 사진은 당시 임시 주총 현장 모습. <고려아연>
반면 가처분이 기각되면 최윤범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 성공에 확실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MBK·영풍 측이 유상증자를 통해 SMC의 영풍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떨어뜨리고, 순환출자 구조를 깨 영풍이 상호주 제한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는 시나리오를 가동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MBK·영풍 측이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에 각각 고려아연 최회장 측 인사를 공정거래법 위반, 횡령·배임으로 형사고발한 사건의 결과도 관심사다.
MBK·영풍 측은 SMC의 영풍 지분 취득이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이며, 최 회장 경영권 방어에 사적으로 SMC가 동원된 것은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MBK·영풍 측은 최 회장과 고려아연 경영진 등을 지난 1월3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고, 지난 2월3일 이들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도 고발했다.
MBK·영풍 측은 SMC가 본업과 관련 없는 영풍 지분을, 마찬가지로 상호주 제한을 받음에도 575억 원을 들여 인수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당 결정에 최윤범 회장의 입김이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SMC 경영진이 적대적 인수합병에 직면한 상황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을 근거로 독자적으로 영풍 지분 인수 경정을 내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재희 기자